
송악면 부곡리에 있는 필경사는 농촌계몽 문학의 선구자였던 심훈선생이 1935년 소설 상록수를 탄생시킨 곳이다. 그리고 송악면 부곡리는 심훈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며 심훈의 장조카인 심재영씨(95년 작고)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심재영씨는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모델이며 상록수에 등장하는 공동경작회 또한 심재영씨가 조직한 농촌계몽 운동 조직이었다. 지금도 부곡리엔 필경사와 더불어 심재영씨의 생가가 남아있어 이들 일가의 일대기와 상록수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첫번째 사진은 1937년 6월28일에 촬영한 부곡리 공동경작회의 모습이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공동경작회를 조직한 심재영씨다. 박동혁의 실제인물인 심재영씨는 서울에서 농업전문학교를 마친후 1930년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두고 단신으로 송악 부곡리로 내려왔다. 그때부터 동네 청년 12명과 공동경작회를 꾸려 문맹퇴치와 생활개선운동을 벌여나갔다.
심훈선생이 부곡리로 내려온 것은 1932년. 심재영 씨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심훈선생은 필경사를 짓고 집필에 몰두해 문제작 상록수를 탄생시켰다. 공동경작회는 일제의 강제 공출로 인한 운영난과 회원들이 하나 둘 징용으로 끌려가 결국 1941년에 해체되고 말았다. 척박한 식민지 농촌에서 계몽운동으로 청춘을 불살랐던 심재영씨는 지난 95년 4월5일, 부곡리 자택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심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명’을 갖고 태어난다”며 “그 사명을 저버리지 말고 참되고 진실되게,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하면서 살 것”을 젊은이들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받는 사랑은 빚이지만 주는 사랑은 재산이므로 반드시 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번째 사진은 심훈의 부인 안정옥여사(앞줄 가운데)와 세 아들, 심훈의 누이 심원섭의 모습이다. 심훈의 부인과 세 아들은 지금도 생존해 있다. 큰아들 재건씨(맨오른쪽)는 6.25때 납북돼 지금도 북한에 살고 있으며 둘째 재광씨(왼쪽)와 재호씨는 모친과 함께 미국에 살고 있다. 심훈은 이들을 남겨놓고 1936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번째 사진은 부곡리로 내려와 작품활동에 몰두했던 심훈의 원고를 서울로 부치기 위해 부곡리에서 기지시 우체국까지 걸어서 원고를 배달했었다는 집배원의 모습이다.
네번째 사진은 심훈선생이 부곡리 조부댁에서 친구들과 촬영한 사진이다. 맨 왼쪽이 당시 심훈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