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경사는 아버님 심훈이 터를 잡고 설계하고 완공시킨 유일한 ‘심훈의 집’이다.
이 집에서 1935년 소설 ‘상록수’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36년 4월에 내가 태어났다. 이 해에 아버님 심훈은 ‘상록수’책 출판관계로 서울에 갔다가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태어난지 반년도 채 못되서였다. 나는 서울에서 삼촌댁으로 전전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송악초등학교를 마치고는 고향 부곡리를 떠나고 말았다. 그 후에 내가 고향을 위해서 한 일이 없다. 고향을 지켜온 여러분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동안 아버님 심훈의 작품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내가 철이 들기 시작한 어느날 큰집(부곡리 방축골에 있는 심 훈의 부모님댁) 다락 한귀퉁이에서 아버님 심훈이 남긴 친필유고가 눈에 띄었다. 주인도, 챙기는 사람도 없이 버려진 채였다. 유고 일부는 쥐들이 갉아먹고 또 일부는 좀이 슬고 또 일부는 찢어지고 없어진 상태였다. 나는 이 원고들을 정리했다. 없어진 부분은 대학교 도서관을 뒤져서 찾아냈고 또 일부는 당시 고서수집가인 백순재 선생의 다락방에서 발견했다. 뿔뿔히 흩어지고 남의 손을 거치는 동안 내용이 변조된 책들도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는 1966년 아버님 심 훈 30주기에 ‘심훈 문학전집(전3권)’을 국판으로 출판했다.
이 탐구당판 ‘심훈 문학전집’에는 심 훈의 작품 99%가 완벽하게 실려 있다고 자부한다.
1960년대초 신상옥감독이 영화 ‘상록수’를 만들 때 자료를 제공했다. 최은희와 신영균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2000년 1월1일에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심훈 시가집 (제1집) 이른바 시집 ‘그날이 오면’ 영인본을 출판했다. 이 수제본은 아버님 심훈이 친필로 쓰고 직접 제책하고 당시 조선총독부에 출판허가를 받기 위해서 만든 유일한 책이다. 조선 총독부는 이 원고에 행과 글짜마다 붉은 연필로 긋고, 삭제도장을 찍고, 출판 불허도장을 찍고 되돌려 보냈다. 이 수제본은 그 검열원본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당시 우리문학에 대한 일제검열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유일하게, 완벽하게 남아 았는 우리 문학사의 보물일 것이다.
현재 친필유고로는 ‘상록수’ ‘직녀성’, ‘영원의 미소’ 등 장편소설의 친필원고와 중편 ‘황공의 최후’ 그리고 수필 등등 천여장이 넘는다.
그리고 영화제작을 위해 각색한 영화 ‘상록수’ 각본원본이 완벽하게 살아 있고 영화소설 ‘탈춤’의 영화각본, 심훈 자신이 제작 감독 촬영하고 당시 단성사에서 상영한 영화 ‘먼동이 틀때’의 촬영대장 원본이 첫장부터 끝장까지 있다.
그리고는 ‘상록수’, ‘직녀성’의 초판본, 당시 검열받은 흔적이 있는 신문연재철 심훈의 작품과 관련된 당시 인사들의 사진과 가족사진들이 따로 보관되어 있다.
이 심훈의 유품들은 우리 민족 근대-현대문학사에서 대규모로 남아 보존된 우리 민족의 유일한 문화유산일 것이다.
작년 10월에 나는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때 내가 태어난 필경사를 중심으로 <심훈 상록수기념문학관>이 건립되고 부곡리 일대에 <상록수공원>이 조성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필경사 경내(충남문화재 제313호)에 심 훈기념문학관이 들어서기만 한다면 내가 지난 50여년동안 모으고 아끼고 지키느라고 애써온 아버님 심훈의 문화유산이, 아니 우리 민족의 문화재산이 고향으로 돌아올 날도 멀지 않았구나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산만으로 둘러싸인 부곡리 일대에 부곡공업단지가 이미 들어섰고 또 다른 기업들이 공업단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내가 어려서 진달래꽃 따먹고 칡뿌리를 캐먹던 큰동산이 바다를 매립해서 흔적도 없어졌고 따라서 일제하 우리민족 농촌운동의 발상지이며, 심훈의 유적지이며, 내 고향이며 우리민족 국가의 문화자산인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일대가 공장터로 매립되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지금 당진 현지 지역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심훈상록수기념문학관>이 들어섰고, 주변을 확장해서 <상록수공원>이 조성되는 날에는 부곡리일대는 이 지역주민을 중심으로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 되살아나고 부곡공단 임직원들과 가족에게는 자랑스런 휴식공간이 될 것이며 이 지역의 관광지로서 어느 지역보다도 소중한 여건을 갖추게 되는 관광명소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날이 올 때까지 또 다른 고향지키기 운동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 고향 지키기를 위해서 나도 두 팔을 걷어부칠 각오가 되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