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지난 98년 7월15일 전남 목포시와 함평군 등 1개시, 4개군, 주변 바다를 메워 1억3천만평의 땅을 조성하기로 했던 영산강 4단계 간척사업을 백지화 하기로 했다.
60~70년대 국토확장과 농지확보를 목적으로 시작돼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대단위 간척사업이 식량자급율을 높였다는 성과를 가져온 반면 그 이면엔 해양생태계 파괴와 담수호의 오염, 어민 생계터전 상실이라는 그늘이 있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결정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사업에 들어가기로 한 2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도 IMF 체제하의 국가경제에는 짐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의 지도를 단숨에 바꿔놓는 대단위 간척사업은 이로 말미암아 첫 제동이 걸린 셈이 됐다. -
당진은 지난 79년 삽교호 방조제 준공을 시작으로 대호·석문지구 등 대단위 간척사업이 속속 이어져 리아스식 해안이 단조로운 방조제로 바뀌었다.
면천·순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다와 접해있던 당진은 이로 인해 불과 20여년만에 신평·송악·송산·석문만이 바다를 접하게 되었다. 게다가 80년대 말 서해안 개발시대가 열리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갯벌들이 각종 공단부지로 매립되기 시작했다.
88년 한보철강과 91년 고대·부곡공단, 당진화력이 모두 수십만평의 공유수면을 매립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간척사업을 포함해 그동안 매립된 당진의 공유수면은 모두 4천4백여만평(14,701㏊). 여의도 면적의 50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는 동안 당진의 산업구조도 급격히 변해갔다. 당진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던 수산업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날이 쇠락해 85년 1,773가구였던 어업가구수가 10년 후인 95년 1,192가구로 6백여 가구가 줄었다. 수산물 생산량 또한 85년 1만2천여톤에서 90년 1천4백여톤으로 불과 5년만에 과거의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우량농지를 확보해 복지농촌을 만든다는 취지로 벌어진 간척사업, 서해안 시대의 거점기지로 개발하기 위해 메워진 당진의 연안. 그렇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갯벌을 대신해 돌아온 드넓은 간척농지는 기대했던 만큼 희망의 땅이 되어주고 있을까.
공단부지로 어장을 내어주었던 이들은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으며, 한달 앞으로 바짝 다가온 새로운 천년대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그려지고 있을까. 바다를 잃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찾아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