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번째
▲ 첫번째

우강면은 1942년 10월1일 일제의 지방행정구역 명칭변경에 의해 과거 범천면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의 범근내포의 범근내에서 유래된 범천면은 당초에는 면천군에 소속돼 있었으나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당진군에 편입됐다.

우강이라는 명칭은 우평과 강문, 즉 소들강문에서 한자씩 따서 지었다.

우강면의 지형은 구릉성 야산지대인 동부지역을 제외한 서부지역의 대부분이 간석지를 막아서 만든 평야지대이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간척사업을 진행하는 요즘과는 달리 과거에는 자연 마을단위로 공동작업을 통해 간석지를 개간했다.

첫번째 사진은 1960년대 우강면의 한 마을 주민들이 간척사업을 위해 개흙을 나르는 모습이다. 중장비 하나 없던 당시에는 주민들이 일일이 삽과 지게를 이용해 개흙을 퍼 날랐다. 한복 차림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농민들도 눈에 띄고 옛날에 볼 수 있었던 밀짚모자도 보인다. 장비라고는 삽과 지게. 순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얼마나 간척을 하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사람의 의지는 정말 대단했다. 상당면적의 우강 농지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배곯던 시절, 그래서 식량증산을 최고의 국가역점 시책으로 삼던 시절의 한 풍경이다.

두번째 사진은 1950년대 우강면 송산리에 위치한 피난민 정착 사업소에서 미국 잉여농산물 원조물자를 배급하는 장면이다.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은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정착촌을 구성했다.

당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우강면 송산리도 그 중의 하나였다. 고향도, 집도, 농토도 잃어버린 피난민들은 토착민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PL480이라 불린 미국 잉여농산물 원조물자에 의존했다. 미국 원조물자 배급소에 길게 늘어선 피난민들의 모습은 전후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가슴 아픈 장면이다.

세번째 사진은 당시 버스정류소의 모습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버스가 눈길을 끈다. 버스에 기대어선 기사는 모자는 삐뚤어졌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었다.

도움말 : 홍석표 내포향토문화연구원장

사진제공 : 우강면지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