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속으로1
▲ 추억속으로1

한동안 캥거루 족이라는 말이 세간에서 화제가 됐듯이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에 진출하기를 두려워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와는 달리 우리 나이 때의 동년배들이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해 어린 나이 때부터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았다.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 내 삶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 점포를 운영하며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무렵의 모습이다.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난 후 고향(고대면 성산리) 친구인 박정길(오른쪽)과 야유회를 가서 포즈를 취했다. 이 때의 나이가 불과 18세였다. 어린 나이지만 일찍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인지 지금 봐도 의젓해 보인다. 그래도 당시 유행하던 선글라스를 쓰고 멋을 낸 모습이 내 청춘의 한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만 같다.

군대 입대 후 육군 11사단 수색중대 작전 상황실에서 근무할 때의 모습이다. 우리 부대는 휴전선에 인접한 동해안에 배치돼 있었는데 인근 고지에서 보면 금강산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 와 닿았다. 사진에서 내 뒤에 있는 위병초소를 잘 살펴보면 지붕이 초가지붕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는 위병초소는 물론 막사의 지붕도 모두 초가지붕이었다. 지붕뿐만 아니라 벽도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사람들은 무슨 조선시대 병졸 막사냐고 할지 몰라도 힘든 훈련에 지친 병사들에게는 훌륭한 휴식처였다.

결혼 후 고향으로 내려와 당시 3살이었던 딸 진아와 함께 마을 뒷산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 진아는 내 삶의 크나큰 원동력이었다.

1970년대 후반 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할 때 활동하던 조기축구회의 모습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조기축구붐이 일었었는데 당진에서도 조기축구회가 잇따라 결성되면서 경기를 벌였다. 당진시장의 상인들은 백마조기축구회라는 이름의 축구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당시 열렸던 행사에서 깃발을 앞세우고 당진 이교를 건너 경기장으로 향하던 모습이다. 우리들이 거닐었던 이교는 몇년전 철거되고 지금은 새 다리가 놓여졌다.

5년 전 아들인 광용(39, 사진 오른쪽)이네 집에서 가족들끼리 찍은 사진이다. 왼쪽이 첫째 아들인 상용(40)이고 가운데가 첫째, 둘째 며느리다. 내가 안고 있는 아이는 손주 한규, 아내가 안고 있는 아이는 은지다. 힘들 생활 속에서도 지금까지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이 여러모로 든든하게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족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