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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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다 갖고 있는 결혼식 사진이 내겐 없다. 결혼식날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구식으로 혼례를 치르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날 마침 아랫집에 사는 친구가 산기가 있어 혼례 치르는날 주위에서 애를 낳으면 산부정을 탄다고 하여 애를 낳기 전에 얼른 식을 올리고 시댁으로 갔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폐백드릴 술이며 혼수인 재봉틀까지 놓고 왔던 기억이 난다. 요란하게 시집을 온 나는 이후 가정생활은 별탈없이 잘 지내왔다.

첫 번째 사진은 그동안 결혼사진이 없는 아쉬움을 달래주었던 약혼사진이다. 74년도 여름철, 중매로 신랑을 만났는데 마음에 들면 이렇게 사진을 찍고 그렇지 않으면 헤어지는 게 당시 관행이었다. 양가어르신들과 중신애비, 시누이들의 모습이다.

두 번째 사진은 우리 시아버님의 환갑잔치 사진이다. 많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렇게 밭고랑에 늘어서서 사진을 찍었다. 흙에 덮혀 발아래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원래 활동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농사일에 세 아이의 뒷바라지, 시부모님 봉양, 맏며느리 등 해야 할 역할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음에도 84년부터 동네 부녀회장까지 맡아 활동해 왔다. 한 가정뿐만이 아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손길을 줄 수 있는 새마을 활동이 나에겐 큰 보람이었고 낙이었다.

세 번째 사진은 석문면부녀회장으로 활동하던 94년도, 각 읍면 부녀회장단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비디오 촬영을 한다고 해서 한복을 입고 제주도를 누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때가 나에게는 새마을 활동의 절정기였다. 어제의 용사들(?) 모습이 지금봐도 어제본 것처럼 생생하다. 이영희 군회장님을 비롯 송산 박영옥, 합덕 인옥자, 신평 이재필, 우강 김영금, 당진 김화자, 정미 장정순, 송악 정순기 부녀회장이다.

새마을 활동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94년도 충남도 사례발표에서 1등상을 타 시상금으로 4천만원을 받아 마을회관을 지었던 일이다. 그때 받은 1등상은 그래도 내가 헛되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받은 셈이어서 보람도 컸고 동네도 잔치분위기였다.

물론 내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남편(김만근)과 시어머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시어머니와 나는 그동안 한번도 다툰 적이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다, 어머니는 결혼사진이 없는 것을 나보다 더 마음아파 하신다. 여자로 태어나 웨딩드레스 한번 못 입어보고 결혼식 사진도 없는 것이 어찌 한이 되지 않았으랴마는 그저 탈없이 살아온 지난 세월에 만족하기로 했다. 환갑 때나 멋지게 한장 찍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