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형님(인긍환)은 일찍이 세상을 등지신 아버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자식처럼 돌보셨다. 5남매 중 막내였던 나와 큰형님과의 나이차가 무려 20여살 가까이 되었으니 나에겐 실제 아버님 같았다. 아버님보다 큰형님에 대한 추억이 훨씬 많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사진은 내가 일곱살 때,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939년도 봄, 벚꽃이 피었을 때 군자정 돌다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생애 처음으로 찍은 것이기에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진이다.
어느날 큰형님이 학교에 오셨다. 꽃이 피었으니 나가서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데리고 가신 곳이 바로 군자정이었다. 당시 군자정은 볼품없이 허물어져 있었으나 벚꽃 만큼은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정자가 세워진 연못 한가운데의 뚝섬과 그 뚝섬을 잇는 돌다리는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형님은 나를 대학까지 가르쳐주셨다. 인생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나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고생을 많이 한 탓이었을까. 말년에 치매에 걸리셔서 정신을 놓으시고 엉뚱한 곳에 가 계실 때가 많아 연락을 받고 집으로 모셔다 드리곤 했었다. 형님은 지금 다불산 자락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아직 생존해 계신 형수님을 위해 집에서도 형님의 묘가 잘 보이도록 집앞 나무를 베어내도록 했다. 형수님이 아침에 눈뜨면 바라보실 곳이 바로 그곳일 것이기에... 그리고 형님이 누워계신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가 누울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군자정은 면천면 성상리 면천초등학교 아래 조그만 연못 한 가운데에 있는 정자이다. 고려시대 때 면천지군사였던 곽충룡이 못을 파고 정자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팔각정의 큰 정자였으나 보수하지 않아 폐사되었다가 군자정터가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에게 나라에서 내려준 땅이라 하여 이조말엽에 그 후손들이 육각정으로 중수했다. 그 후로 다시 허물어졌다가 1961년도 군비로 다시 중수했고 가장 최근엔 1995년도에 복원공사를 벌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진군 향토유적 1호.
참고:유서깊은 면천. 19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