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낙준
▲ 유낙준

고향인 우강은 내게 평생을 보낸 마음의 안식처다. 이 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일제시대 말기 수탈의 역사와 동족간 전쟁으로 한 마을 사람들끼리도 총을 겨누어야 했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세대들은 숱한 어려움에 처했었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지금의 이 마을을, 그리고 이 고장을 만들었다. 이제 내 나이도 칠순이 됐다. 세상사 일에 한발 물러나 서예에 취미를 두고 묵향에 취해 지내며 가끔 옛날을 추억해 본다.

첫 번째 사진은 한국전쟁 후인 1950년대 후반으로 우강면 창리의 옛날 집에서 열렸던 누님 유갑준의 결혼식 사진이다. 사진에서 뒷줄 맨 오른쪽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가 나다. 예산농고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에 집에서 농사일을 도울 때의 모습이다. 한창 젊은 시절의 힘과 패기가 느껴진다. 사진 가운데로 흰색 한복을 입으신 부모님의 모습도 보인다.

두 번째 사진은 군대를 제대하고 집 근처의 우강 들녘에서 찍은 것이다. 맨 오른쪽의 젊은이가 나이고 가운데가 매제, 왼쪽이 매부이다. 사회에 막 발을 디딜 즈음 갖가지 고민에 휩싸여 있던 나에게 가족들은 큰 위안이 됐다. 함께 술 기울이며 고민을 나눴고 세상의 경험도 공유했다.

세 번째 사진은 1960년대 동네 개발위원을 지낼 때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마을길을 내던 당시의 모습이다. 지금의 우강농협 주유소 근처로 예전에는 양조장이 있던 자리에서 동네 개발위원들이 마을길을 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이 나고 맨 왼쪽에 이장을 맡았던 안영식의 모습도 보인다. 당시 마을길은 동네 개발위원들이 현장에서 지형을 보며 지도에 연필로 긋는 대로 만들어졌다. 때가 때인 만큼 길은 연필로 긋기가 무섭게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지금에 비하면 무척 간편하게 도로가 건설됐지만 편입토지의 주민들은 한푼 보상도 없이 땅을 뺏겨야 했다. 위로 보이는 부녀회 명의의 플래카드에도 일부 내용이 보이지만 토지수용을 반대했다가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릴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