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정낙근 회장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 광명은 격동의 시기를 걷고 있었다. 넓게 펼쳐있던 돈과 밭은 모두 아파트와 도로가 뻗어나갔고 곳곳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원, 운동장소 등이 들어서게 됐다.

북창초등학교 총동문회 정낙근 전 회장은 “고향 당진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광명시가 발전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가 떠오른다”며 “무일푼으로 광명에 자리 잡고 힘든 직장 생활이며 지인 하나 없는 곳에서 성공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어 다니던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소소리 친구들과 나누는 추억

정 회장은 본래 합덕읍 소소리가 고향이다. 본적이 합덕면 소소리 로 돼 있어 3학년 때까지는 합덕초등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소소리 친구들도 왠만해서는 다 알죠. 죽마고우 4~5명이 광명시에 함께 살고 있어 한달에 한 두번씩은 꼭 만남을 갖고 있을 정도니까요."

정 회장은 3학년을 마친 뒤 북창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금새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북창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파주에 자리잡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파주로 이사하게 됐다. 정들었던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웠다.

고향 친구의 도움으로 IMF 이겨내

“파주에서 학교생활을 마친 뒤 군대도 제대하고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어린시절 함께 정들었던 친구들과의 시간을 대신해 주지는 못하더군요. 마음 한 켠에는 고향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나 봅니다.”

군에서 제대한 그는 광명시의 기아자동차에 입사하게 된다.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지만 그에게 광명은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비록 개인사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능력과 인맥을 구축해 나갔다. 광명 이곳저곳을 다니는 영업사원이었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고 당진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선후배,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사회생활도 안정화되고 동문회 모임을 통해 허전했던 마음을 달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던 정 회장은 IMF를 맞아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합병되면서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야 했다. 아직은 경제생활을 필요로 하는 나이였기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이런 고민을 갖고 있던 때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고향의 친구들이다. 중고차 매매상으로 활동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인천 주안에서 지금까지 17년 째 활동 중에 있다.

동문들 마음 모아 모교 살려

정 회장은 이후 총동문회 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졌고 6대 총동문회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역량을 키워왔다. 당시 북창초등학교는 재학생 부족으로 인해 폐교 대상학교인 상태였다. 모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모교를 살리기 위해 동문들은 한마음으로 뭉쳤다.

모교 살리기 기금을 모금하는 6개월 동안 북창초등학교 동문들은 8500만 원을 모금했다. 또 장학기금으로 총동문회 측에서 1500만 원을 더해 총 1억 원을 모교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정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70세가 넘으신 1회 졸업생 분들이 모교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쌈지 돈을 건네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약5600명의 졸업생들이 마련한 발전기금이 지금의 북창초등학교를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약력>

- 북창초등학교 8회 졸업

- 북창초등학교 총동문회 6대 회장

- 북창초등학교 재경동문회 고문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