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 촌놈’ 서울에 자리 잡다
“60~80년대 당진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서울, 인천, 경기 등에 상경해 자리 잡던 때였습니다. 각 가정의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해 지금 세대처럼 교육수준도 높지 못했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바로 경제활동을 시작해야 했던 때니까요.”
북창초등학교 재경동문회 이장호 회장은 경기도 성남시에서 명품인테리어를 운영 중에 있다. 순성면 중방리가 고향인 그는 북창초와 합덕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장훈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입학부터 이 회장은 학우들 사이에서, 졸업 후에는 사회에서 ‘당진 촌놈’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이 회장은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노력하는 자세를 길렀다”며 “공부나 일은 물론 인간관계 형성을 적극적으로 해 서울 깍쟁이들을 내 인맥으로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낯선 땅 ‘내 사람 만들기’에 주력
지방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라고는 고작 5~6명 정도인 학교에서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그가 먼저 한 발 다가갔다. 사회에 나와서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중앙식품을 개업하고 인근 지역의 조기축구회에 가입해 ‘내 사람 만들기’에 힘을 기울였다.
쉽지만은 않았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작은 사회 속에 ‘당진촌놈’이 뛰어들어 내 사람을 만들기에는 그만한 배짱과 각오,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7년 전 오랫동안 운영해온 중앙식품의 문을 닫고 인테리어 사업에 도전했죠. 잠실동에서 성남시로 이사와 명품인테리어를 운영하고 있지만 내가 만든 인맥들은 아직도 내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의 ‘내 사람 만들기’는 성공적이었다. 낯선 서울 땅에서 만든 고등학교 동창들의 인맥을 비롯해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도 이제는 그를 지역사람으로 대한다. 지역사회에 참여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 자체에 녹아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향에 대한 뜨거운 애착
당진을 떠나 제2의 고향에 정착한 이 회장이지만 고향에 대한 애착은 아직도 뜨겁다. 북창초등학교 재경총동문회 활동을 통해 모교에 대한 관심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온 선후배 및 친구들과 꾸준히 인연을 맺고 있다.
이 회장은 “북창초는 신평을 비롯해 합덕, 우강, 순성 등 인근 지역 학생들이 대거 진학한 곳으로 당진 지역 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곳”이라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보냈던 추억을 함께 회상하며 기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회장은 충청향우회 당진·합덕 출향인들의 모임에서도 활동 중이다.
발전하는 고향 모습 자랑스러워
종종 당진을 찾을 때면 급격하게 변해버린 모습에 놀랄 때도 많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산도 강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곳도 있다. 서해대교를 비롯해 대전·당진간 고속도로 등 각 지역과 연결되는 교통편도 좋아져 인구도 증가하고 각종 산업단지도 마련돼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이면 충분한 길이지만 그때는 서울, 인천으로 연결되는 길이 신례원을 거치는 비포장 도로 뿐이었다. 당진에서 서울, 인천까지 가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릴 때였으니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당진을 비롯해 서산, 태안 등은 기차도 고속도로도 없던 충남의 오지였죠. 서울, 인천 등에 가려면 바닷가에서 통통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기도 했고 신례원까지 돌아가 기차를 타고 가야할 정도로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지금의 발전된 당진의 모습은 출향인으로서 놀랍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장호 대표>
- 북창초등학교 13회 졸업
- 합덕중학교 25회 졸업
- 북창초등학교 재경동문회 회장
- 명품인테리어 대표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