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의 단상
안승환상록문화제 집행위원장
제부터인지 우리에게는 유력한 인사들의 새해 인사 및 소망이라는 글이나 말들이 언론에 호들갑을 떨며 나와야만 그 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글이나 말들은 그렇게 여러해 발표되어 온 몇년 전이나 올해나 다 똑같은 말로 되풀이 되어서 주민들은 식상해 했고 본인은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다.
그들, 나라를 위하고 주민을 위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거짓말, 세금 떼먹기, 법을 어긴 사람들이 간다는 곳에서 벌을 받고 했던 기억만이 머리에 박힌 본인은 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세상은 물이 편한대로 흐르게 그냥 두지 않듯이 그들처럼 연필을 들고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다.
조선시대 우리들의 국가구조는 다섯개로 그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권력을 욕심내는 사람들은 벼슬을 살았다. 누런 금덩이를 길바닥 돌을 보듯하며 오직 임금과 백성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며 보람된 삶을 찾았다.
마음과 학문을 하늘처럼 뗘 받드는 선비들은 권력과 황금 두가지를 모두 시궁창의 흙을 보듯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조물주가 만든 인간의 한계를 아침 저녁으로 넘나들며 마음과 정신의 부자로서 그 명예를 먹고 살아 많은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빼어난 민족의 얼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중인계급의 상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신분상의 여건으로 벼슬을 못하고 학문도 접근할 수가 없었으며 감히 넘보지도 못하였다. 다만 황금만 쫓아서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수품 및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예술의 한 부분을 공급해주어 권력과 학문을 쫓는 사람들 틈에 주어진 그들만의 역할을 하면서 대신 대부분 풍족한 생활을 했다.
농민들은 신분의 제약이 없었다. 농민은 백성의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귀중한 존재로서 봉건사회에서도 존중되는 역할로 받아들여져서 그들은 자긍심과 맑고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우주 자연의 문화를 꽃피우는 역할을 했다.
끝으로 아주 적은 수의 천민이 있었다. 이 계층도 신분이 철저히 대대로 내려져서 국가에 대한 저주와 극도의 분노를 품은 부족으로 살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가장 더럽고 거칠은 일로 그들의 역할을 했다.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임꺽정 할아버지를 지금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미개했다는 (현대의 과학적인 잣대로 볼 때) 조상님들이 사시던 시대의 사회 경영이 위와 같이 백성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완전하게 이루기를 요구했으며 또한 서로의 부류간에 강한 견제를 하여 사회를 꾸려왔다.
발전한 사회라는 오늘의 우리들 꼴을, 미개했었다는 시대에 비추어, 우리 모두를 되돌아보는 새날이기를 꿈꾸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