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시대에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노력한 권동진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을 주도한 권동진 선생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일찍이 조국 근대화와 부국강병에 관심을 갖고 19세에 사관양성소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후 육군 초관을 거쳐 함안군수와 거문도 첨사를 역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0여년간 신식 문물을 익혔다. 1906년 귀국한 이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에 참여하고, 손병희의 영향으로 천도교에 입도하여 도사로 활동하였다. 1918년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자 손병희의 지시로 오세창과 함께 3·1운동을 계획, 추진하는 데 앞장섰다.

드디어 1919년 3월1일, 종로 태화관에서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여 세계만방에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널리 알렸다.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지만 민족독립 의지를 잃지 않고 1927년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를 결성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폭발하자 신간회의 진상조사위원으로 민중대회를 개최하여 전국적인 독립운동을 확대하고자 시도함으로써 재차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에도 임정 요인들이 환국하자 오세창과 함께 임시정부 환영 국민대회를 주도하여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보훈처는 선생의 독립운동 공훈과 서거 60주기를 기려 이처럼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