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모처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당진도서관(군민회관)으로 김동운(현대제철 근무)·김덕진(주부)씨 가족이 나들이를 나섰다. 포항에서 당진읍으로 이사 온 3년 전부터 김동운씨 가족은 줄곧 도서관을 찾았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도서관을 찾은 아현이(당진초3)와 송현이(당진초2)는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 책에 나온 곳에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책 읽는 게 정말 재밌어요.”(아현)

평범한 가족의 책 읽는 ‘습관’

김동운씨 가족은 6개월간 네 사람이 무려 478권을 독파하는 등 독서를 통한 가족문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진도서관과 한국도서관협회가 공동 선정하는 2007년 하반기 ‘책읽는가족’에 선정됐다. 이 가족은 매주 1인당 5권씩 약 20권을 대여해 읽고 있다.

“언제부턴가 도서관에 오는 게 주말 일과가 됐어요. 책을 빌리면 반납을 해야 하고, 반납하러 왔을 땐 책을 또 빌리게 되고요. 그러다보니 이젠 습관처럼 도서관에 오게 되고 자연스레 아이들도 책과 친해진 것 같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 그리고 초등학생인 두 딸.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 가족이 ‘책읽는 가족’이 되게 된 비결은 바로 도서관에 가는 ‘습관’이었다. 게다가 엄마인 김덕진 씨가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얼마 전부터 부업으로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자연스레 독서 습관에 힘을 실어 주게 됐다.

군민회관에 임시로 마련된 당진도서관 휴게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현이와 송현이는 자료실을 오가며 연신 책을 가져다 읽었다.

“아이들이 갓난아이 때 할머니 손에서 컸어요. 엄마 손이 가장 필요할 때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아현이가 4살 때부터는 잠자리에서 매일 동화책을 읽어줬죠. 아마 그때부터 아이들이 책과 친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김동운씨의 거실은 여느 가정집과 조금 다르다. 보통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자리엔 400여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텔레비전보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젠 집에서도 쉬는 틈틈이 책을 읽는다.

“요즘엔 아이들이 책에 빠져 있어서 오히려 학교 공부를 먼저하고 책을 보라고 할 정도예요.”

김동운씨와 김덕진씨 부부는 책 읽는 것이 ‘습관’이라고 연신 말했다. 바빠서 책 읽을 틈이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라 기자의 마음이 뜨끔했다.

책을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기

“평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다보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적죠. 하지만 주말마다 도서관을 함께 다니면서 아이들이 고르는 책을 통해 아이들의 관심사, 생각 등을 알 수 있게 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어요.”(김동운)

처음부터 김동운씨가 도서관 나들이에 동참했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 김동운 씨도 일주일 내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늦게까지 쉬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계획이 있어도 도서관 가는 시간은 항상 비워둔다고.

송현이가 어릴 적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많아 거리감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어젯밤에는 같이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도 나눴다며 김동운 씨가 살짝 미소 짓는다.

김동운씨는 “당진이 아직 대도시에 비해 문화시설이나 교육시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책을 통해 아이들이 간접적으로 배우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또 김덕진씨는 “무엇을 읽어야 한다고 정해주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고 읽고 터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옳고 그름 등도 자연스레 배워가게 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현이와 송현이가 만화로 된 책 위주로 읽어도 나무라지 않고 대신 동화책과 만화책을 읽는 비율을 2:3으로 정해주었다고 한다.

아현이는 요즘 역사물에 빠져있다. 유일하게 가족이 텔레비전을 보는 주말 저녁에 봤던 사극드라마 영향이란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일들이 실제로는 어땠는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어요. 역사가 정말 재밌어요. 나중에 커서 역사탐험가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세종대왕전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아현이가 역사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초롱초롱해 진다.

“모국어 능력이 우선돼야”

아현이에게 아빠, 엄마가 왜 도서관에 함께 다니는 것 같으냐고 묻자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운씨는 “언어능력이 우선 뒷받침돼야 영어나 수학 등 다른 학문을 습득하는 능력도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영어도 결국 아이들이 배울 땐 한글을 통해 이해해야 할 학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학문은 결국 한글로 되어 있으니 우선 모국어 능력을 키워야 다른 학문을 선택하게 될 때 폭도 넓어지고 이해력도 빨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 어휘력을 기를 수 있고 간접경험을 통해 생각이 유연해지잖아요. 그러면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되고 그것이 몸에 체화가 된다면 이것만큼 좋은 교육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김덕진씨는 “아이들이 남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며 “책을 통해 지식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도 키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시기에 당진으로 이사를 오게 된 김동운 씨 가족은 처음에 아이들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물론 그 고민이 지금 다 사라진 것도 아니다.

김동운씨는 “아이들이 너무 각박한 대도시에서 경쟁적으로 살지 않고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자유로운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진로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오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민이 될 것 같다”고 당진군에서 사는 소감을 말했다.

그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변 동료들도 교육문제 때문에 당진으로의 이사를 많이 고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