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매일 그러했듯이 오늘도 출근해서 외롭게 지켜야할 교장실로 들어왔다. 좀 앉아있으니 행정실 조무원이 신문 위에 차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무뚝뚝한 인상을 줄 것 같아서 가볍게 말을 건넸다.

“오늘 화장을 짙게 한 거 같으네?”

“아니예요. 평소처럼 했는데요.”

“아 그런가?” 라고 말하는 사이 문을 닫고 나갔다.

차를 들면서 당진을 대변하는 지방지를 한 장씩 넘기며 당진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얼마전 당진 모 주간지에 사정해서 글을 게재한 일이 있다. 글의 내용은 당진을 시로 만들기 위한 군민들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정까지 하면서 글을 실었어야 했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나름대로는 독자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깊은 뜻이 있었다.

모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고 부탁했더니 게재하기가 곤란하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수준 미달의 졸필이라는 자책감으로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았다. 마침 언젠가 다른 신문사 편집국장님과 인사하면서 주고받은 명함이 있어서 연락했더니 원고를 보내주면 고려해보겠다고 하였다. 그 다음주 월요일에 상당한 기대감으로 신문을 펼쳐봤더니 뜻밖의 일이었다. 내가 쓴 글이 분명한 내 이름 석자로 신문에 게재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내노라하는 분들의 글이 있는 지면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도 없는 초라한 모습의 글이었지만 뿌듯한 마음에 몇 번인가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글 중에 이 부분은 이렇게 고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그동안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주위에 다른 분들의 기고글도 읽어보았다. 칼럼이라는 난에 쓴 글은 그 신문사의 주필인 것 같다. 내 자신이 문장 표현력은 부족해도 보는 안목은 중앙지 사설 수준이어서인지 논설문의 형식에 미흡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 있는 어느 교장선생님의 글은 교육관련 글이면서도 그쪽에 문외한이 아닌 내가 읽어도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일반독자가 접했을 때 인내심을 갖고 읽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논객처럼 거의 매주 근엄한 모습의 사진과 게재되는 모 정치후보의 글이 오늘도 신문에 있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글인가 하고 읽어보았다. 정치후보에 걸맞는 야심있는 생각과 거리가 있는 내용의 글이어서 실망스러웠다. 기왕 그쪽에 발을 디뎠으면 당진발전의 비전을 제시하는 글, 유권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글이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피력한 글이어서겠지만 내 이름자 아래에 있는 글을 다시한번 읽어보며 어설픈 몇군데 외에는 괜찮은 글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기대감도 가져봤다. 며칠 뒤에 가까이 지내는 후배교감한테서 전화가 왔다. 신문에서 내 글을 읽어봤다고 하면서 교육자로서 더구나 교장이라는 분이 좀 격에 맞지않는 글이라는 가감없는 비판조의 말을 했다. 또 한분의 교장선생님은 내 글을 읽은 어떤 분의 말을 전해주었다. 당진의 정서를 모르고 쓴 글이라고 하면서 격한 감정으로 송악초 교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더라고 했다. 신문에 내 글이 게재되었다는 대단한 사건으로 으쓱했던 어깨가 위축되고 말았다.

자신이 쓴 글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해도 읽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서 실망스러운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있게 깨달았다. 감히 몇편의 글을 사례로 주제넘은 생각을 써봤다. 당진의 얼굴, 당진을 대변하는 지방지로서 격조있는 신문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는데 두서없는 글임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무쪼록 본지가 당진사회에서 당당하게 정론을 펴나가는 지방지가 되길 바란다. 강한 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당당한 신문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지키는 신문이었으면 한다.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그들이 참여해서 만들어지는 신문이길 바란다. 힘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