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제1회 대한민국 도서관 축제에 참가하여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게 되었다. 소설가 김훈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어 긴 줄을 마다않고 기다린 끝에 책을 손에 넣었고 사인과 기념촬영까지 할 수 있었다.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책이다.

요즈음 국내외의 정세가 심히 어지러워 총체적 난국으로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 역사의 치욕을 반추함으로서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의 희망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남한산성의 배경은 병자호란(1636)이다. 병자호란 9년 전인 인조 5년(1627)의 정묘호란 때 석 달을 못 버티고 항복했던 조선이었다. 그러나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입으로는 복수를 외쳤지만 군사력은 기르지 않았던 것이다. 국방, 외교에 대한 대비책도 없이 인조가 향명대의(向明大義)를 위해 후금과 화(和)를 끊는다는 사실상 선전(宣戰)의 교서를 내리자 청태종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고 무능한 임금 인조는 정묘년에 그랬던 것처럼 강화도로 피하려 했으나 이미 청군으로 인해 길이 차단되어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국난에 대비해 변변한 준비가 없던 남한산성은 혹독한 겨울을 지내기에는 마땅한 곳이 아니었다.

인조는 병자년 음력 12월14일부터 다음해 1월30일까지 치욕의 47일을 고립되어 있다가 성내의 양식이 떨어지고 수많은 군사가  얼어 죽게 되자 강화를 요청하게 되었다. 인조는 삼전도에 나가 황옥(黃屋)을 펼치고 앉아있는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함으로 항복했다.

이 책에서 예조판서 김상헌(척화론)과 최명길(주화론)은 대의명분과 외교적 실리를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을 하게 되며 청에 대한 항복문서 작성에 이르러 병자호란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책에서는 남한산성과 점령지 조선 땅에서의 군병과 백성의 처참한 생활상, 무기력하고 무능한 조정이 빠른 필체로 묘사되어 있다. 조선은 멸망을 앞두고 있는 명에 대한 사대주의로 인하여 두 번씩이나 국란을 초래하였으나 백성이 받은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거나 돌보지 않았다. 지배층은 백성을 제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며 위세를 떨었지만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지도 않았고 침략을 당하면 백성을 버리고 몰래 피난을 떠났다. 그들이 세운 나라는 백성을 위한 나라이기보다는 지배층인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을 읽은 한국 사람이라면 그 엄청난 치욕에 몸을 떨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대한민국헌법 제1조 2항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