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좌회전은 안돼

경칩이 지나고나니 봄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새 생명들이 움트고 있다. 봄은 오건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깨어날줄을 모른다. 미국발 금융부도가 전세계를 위협하고 11년만의 한국 경제는 최악의 상태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법보다 주먹이 난무하는 국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수 정당의 대처도 문제려니와, 다수 여당의 의연함도 문제니 결국 식술 국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 국민들은 어려울 때마다 팔을 걷고 일어나 나라를 구하는 민족이다. 제발 국민들에게 더 이상 분노를 자아내서는 안된다. 지난달 16일 모든 어려운 대중들을 마음에 품고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평생 사랑과 희생으로 자애를 베푸셨고,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각막 기증으로 빛을 주고 떠나셨기에 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문 행렬이 이어진단다. 우리가 이런 국민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앞이 보이질 않는다. 오늘의 경제나 정치 모두가 비정상적 좌회전으로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을 정치권에서 챙겨주질 못하고 있는 아쉬움도 크다.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지방도 수도권국제완화로 변방이 돼 계획했던 기업들도 주춤하고 있다. 90년도 지방의회와 95년도부터 자치단체장 선거이후 너무 지나친 행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용이나 의미도 적은 일회성 축제행사에 혈세를 쏟아 붙는가 하면 실적 부풀리기 한건주의로 치닫다보니 주민과의 마찰과 갈등 또한 심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명분아래 대규모 사업들도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개발이란 부작용도 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주민들의 이익과 이해는 물론 동의절차가 부족하고 산발적인 공해 업종도 가릴 겨를이 없다.

우리 지역만 하더라도 예부터 천혜의 축복 받은 땅이라 기상재해도 별로 없는 그런 고장이었다. 수도권과 가까우니 타지역에 비해 개발속도가 빠르면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량 기업들도 들어오는가 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불량 기업들도 마구 자리한다.

무슨 까닭이 있기에 전국에서 퇴출기업들이 모여 들어오는 것일까? 이러한 난개발에 수백년 살아온 주민들은 집터와 일터를 잃고 고향도 버려야 할 판이다. 넉넉했던 해안은 엄청난 오염으로 수산업도 손을 놓고 아우성들이다. 치솟는 굴뚝과 철탑, 거미줄 같은 고압선, 산과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다. 숙원사업이었던 대전~당진간 고속도로가 이제 5월 말이면 개통되는데도 당진 관문의 진입과 연접 주변도로의 확장은 물론 조경 정비 계획도 없다. 전국대회 등도 유치는 하였다지만 시설이나 도시미관, 기반도 취약하기 그지없다. 읍이나 승격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갖추어야 할 인푸라 시설은 요원하다.

순서가 뒤바뀌어 대내·외적으로 공신력만 실축되고 일은 더 어렵게 꼬이고 말았다.

2004년 도민체전도 성대히 잘 치뤘다. 그러나 하늘만 보다보니 지방도로나 불량시설물 하 확장·정비도 못했던 일을 군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지역은 다른 시·군에 비해 재정 자립도가 높다고는 하나 지방 예산만으론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정부 차원의 항만개발(평택항은 전액 국비지원)이니 취약한 국·지방도로의 확장, 도청 이전에 따른 소도읍 규모화 사업, 낙후 읍·면의 복지 개발 정비 등 산적한 일들이 많이 있다. 중앙이나 충남도의 지원 없이는 해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예산은 곧 투쟁이다’

사업 계획을 들고 발로 뛰어야 한다. 현재 지방마다 최대 현안은 동네 경제 살피기와 안전한 일자리 만들기, 어려운 서민계층의 복지 문제이다. 더욱이 농촌과 농민, 어민들의 생계문제는 날로 지탱해 내기가 어려우지고 잇다. 영세서민, 영세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각종 공사 현장도 점점 문제가 커지고 있다. 넉넉할 때 알뜰히 살림했다면 몇천·몇만의 일자리도 늘릴 수 있고, 어려운 이웃에 따뜻한 지원이 가능했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란 말들도 잘들하고 있지만 말잔치로 끝나서는 않된다. 정말 지금같이 절망적일때 가장 큰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정치나 행정을 담당하는 지도자들이 착오와 잘못을 저질렀다면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한 때이고,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다면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런 용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더 이상의 “좌회전”모습은 막아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