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가 함께 사는 순성면 봉소리 이지용씨 가족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서용희씨, 딸 미현이, 큰아들 재혁이, 이지용씨, 아내 홍성의씨, 아버지 이병기씨, 막내 재형이.
▲ 3대가 함께 사는 순성면 봉소리 이지용씨 가족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서용희씨, 딸 미현이, 큰아들 재혁이, 이지용씨, 아내 홍성의씨, 아버지 이병기씨, 막내 재형이.

가족 화목의 중요한 두 가지, 대화와 이해

“부모형제 귀한 줄 아는 평범함이 특별한 세상”

7남매 가족 모두 모이면 30명

“애들 다 커서 제 짝 찾아 결혼해 잘 살고, 손자손녀 건강하게 자라고... 부모 형제 귀한 줄 알고 잘들 사는 거, 뭐 그뿐이지. 특별한 것도 없는데...”

가정의 달을 맞아 인터뷰를 하자는 말에 서용희 할머니는 ‘특별한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용희 할머니는 결혼하기 전에 한번 얼굴을 본 게 전부인 남편을 ‘평생지기’로 함께 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땐 다 그랬단다. 헌데 요샌 왜 그렇지 않은 걸까. 이유야 간단하다. 세상이 변했으니까. 개인주의, 여성의 사회진출, 핵가족, 도시화 등. 사회의 변화는 사회의 기초집단인 가족의 형태를 변하게 했다. 그리하여 요즘 세상에는 “부모 형제 귀한 줄 아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가족”이 될 수 있는 듯하다. 가족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특별한 것 없이 화목하게 사는 것이 전부”라는 이지용 씨네를 찾았다.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지용 씨 가족들의 사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부모님 세대와 요즘 세대의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봤다.

이지용 씨네 가족은 모두 7명이다. 아버지 이병기(74)씨, 어머니 서용희(74)씨와 7남매 중 셋째이자 막내 아들인 이지용(45)씨와 그의 아내 홍성의(40)씨 그리고 지용씨의 아들, 딸 재혁이(순성중3), 미현이(순성중1), 재형이(순성초3). 이렇게 3대가 모여 산다. 순성면 봉소리 구절산 아래 자리한 이씨네 집은 이 씨를 비롯한 7남매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이씨의 아들, 딸이 태어나고 자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7남매 키워낸 어머니의 옛시절

어머니 서씨는 22살이 되던 해에 동갑내기 남편에게 시집을 왔다. ‘중신애비’가 가져다 준 남편의 사진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했더니 남편은 말쑥하게 양복까지 차려입고 자신을 만나러 왔었단다. 처음 마주 앉았던 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방바닥만 보다 두 분은 헤어졌단다. 아버지 이병기씨는 이제와서야 “쑥스러워서 그랬다”고 털어놓으신다.

그렇게 백년가약을 맺은 어머니, 아버지는 7남매를 한 집에서 낳아 길렀다. 엄했던 시어머니와 생전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으셨던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시아버지를 닮아 말이 없는 남편과 함께 산 지난 50여년 세월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나 싶다. 그때야 집집마다 아이들을 많이 낳을 때였지만 7남매를 키우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모진 마음을 먹기도 했지만 시어머니의 만류에 모두 낳아 기른 7남매가 이제는 ‘삶의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산 하나를 넘어야 논이 있었어. 애를 등에 업고 머리에는 오봉에다 저 양반 잡술 새참을 이고 산을 넘어 다녔지. 지금 애들은 그냥 넘어가래도 어렵다고 난리일 테지만... 그렇게 힘들게 키웠어. 그래도 명절이나 생일이라고 모두 찾아 와 웃고 노는 모습을 보면 여간 좋지 않지.”

아버지 이씨는 “그만 낳겠다고 하니까 어른들이 생명은 태어나면 제 나름대로 모두 제몫을 하며 살게 되어 있는 법이라고 하셨다”며 아내의 말을 거든다.

7남매이다 보니 큰아들과 막내딸은 나이터울이 16살이나 된다. 그러니 막내는 언니, 오빠들이 보살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맙게도 애들이 다 착했어. 엄마 힘들다고 자기들 옷은 알아서 빨아 입고 다녔어. 그때야 무슨 옷이 많기나 하나, 저녁에 빨아서 아침에 덜 마른 옷을 아궁이 앞에서 말려 입고 다녔지.”

이지용 씨네는 대대손손 손이 많은 집안이다. 아버지도 5남매였다. 이지용 씨 7남매 가족이 모두 모이면 30명이다. 게다가 합덕에 사는 작은 아버지댁 가족까지 합하면 50명은 족히 된다.

아버지 이병기씨는 “손이 많아 다복한 집안”이라며 “재산이 많다고 다복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없이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재산은 자기 몫만큼만 가지고 건강하게 화목하게 사는 것이 최고지. 그냥 살아도 충분한데 오히려 가진 것이 자기 몫보다 많으면 서로 더 가지려고 안달이야.”

대화 - 아침식사는 반드시 온가족이 함께

아버지 이병기씨와 어머니 서용희씨는 가족은 첫째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로 맞춰가면서 사는 게 중요하지. 무엇보다도 이해하며 돈보다 마음을 중시하며 살아야해.”

이지용씨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며느리 홍씨도 “가족 간의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이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며 “특히 아침은 꼭 온 가족이 모두 모여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씨네는 아이들의 등교시간에 맞춰 7시30분이면 가족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막내도 예외란 없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학원 갔다 오는 시간, 이 씨 내외가 퇴근하는 시간 등이 제각각일 때가 많기 때문에 아침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중요시 한다고.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도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화와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루는 막내 재형이가 잘못을 해서 할아버지가 매를 들었다. 일을 끝내고 돌아와 아들 종아리가 퉁퉁 부어 있는 모습을 보고도 홍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그래서 애미를 믿어요. 요즘 젊은 애들 어디 그래요. 자기 자식 중한 줄만 알아서 난리나지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요. 왜 손자를 때리셨을까 생각해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거든...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도 그렇지만 손자와 할아버지도 그래요. 잘 못한 것은 따끔히 혼내고 또 뒤에는 다독거려줘야지. 무엇보다 이해하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이병기씨는 매일 아침 며느리가 일하는 순성농협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저녁이면 태워온다.

며느리 홍씨는 “아버님이 혼낼 만하셨으니 매를 드셨을 거라는 것을 안다”며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사니 웃어른 공경해야 하는 것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재혁이네 반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미현이도, 재형이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도시보다야 농촌이니 3대가 함께 사는 집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재혁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니 무엇보다 학교에 돌아왔을 때 빈집이 아니어 좋단다. 제 친구들은 대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통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데 반해 재혁이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겨주는 것이 가장 좋다.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라면 같은 걸 먹거든요.”

5월은 명실 공히 ‘가정의 달’이다. 1년에 한번 날을 정해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어버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족과의 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 않았는지 한번쯤 돌이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