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주할머니는 시장에 나와서도 택주 걱정이 앞선다. 가판을 정리하는 이선용씨의 모습.
▲ 택주할머니는 시장에 나와서도 택주 걱정이 앞선다. 가판을 정리하는 이선용씨의 모습.

시장서 야채 팔아 홀로 손자 키우고 친정어머니 모시고

5일장이 서지 않은 당진재래시장 안. 한가한 분위기와 다르게 상인들의 손은 여전히 분주하다. 어린 손자와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야채를 팔고 있다는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온 터라 가판에 앉아 계신 상인 한 분마다 어떤 연유로 나와 계실지 궁금하기만 하다. 장사를 나올적마다 손 때묻은 빨간 조끼를 입고 나오신다는 ‘택주 할머니(이선용, 55)’는 재래시장 한 켠에서 가판을 정리하고 계셨다.

택주 생각이면 눈시울 붉어져

택주 할머니는 택주가 기어다닐 무렵부터 돌봤다고 했다. 일찍 아이를 갖게 된 21살 남, 녀가 결혼해 택주를 낳았다. 할머니는 택주의 친할머니다. 아이를 갖게 돼 한 결혼이다보니 결혼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택주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아들인 택주 아빠는 가끔 택주를 보러 오곤 하지만 택주 엄마는 그렇지 않다. 아빠가 간신히 1년에 한 두 번 마련한 자리에서만 엄마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 어린이날이라고 저 아빠가 다녀간 것 말고는 엄마는 안 찾아와요. 아빠도 살기 바쁘니까 가끔 오고… 부모의 정도 채 느끼기 전에 나한테 맡겨져서 그런지 가끔 심술을 부릴 때가 있어요. 내가 시장에 와 있으니까 잘 못보지. 어렸을 땐 어린이집 마치면 나랑 시장에 있다가 들어가고는 했어.”

할머니는 택주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코끝이 찡하신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넉넉지 않은 생활비를 쪼개 학원도 보내봤지만 번번히 친구들과의 다툼 등으로 학원을 이곳저곳 옮기게 됐다고. 할머니는 엄마 없는 손자가 안타깝다며 눈물도 연신 훔쳐내셨다.

“본래는 착하고 활발한 아이인데 친구들이랑 있으면 속에서 엄마나 아빠가 생각나나봐. 그래서 친구들이랑 싸우기도 하고 그래요. 10살 이전에는 그런 행동이 많이 늘어난다고 하던데 10살이 되니까 그나마 나아졌죠. 친구가 없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요즘엔 아침에 학교 같이 가자고 부르는 친구가 생겼더라고요. 엄마, 아빠 때문에 어린 것이 계속 상처로 남을 까봐 걱정이에요.”

76세 어머니와

10살 된 손자의 보호자, 택주할머니

택주 이야기 여념이 없던 할머니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할머니 한 분이 끌고오는 리어카를 받아들더니 이것저것 묻기 바쁘셨다.

“우리 어머니인데 오늘 된장 담그신다고 조금 늦으셨어요. 원래는 같이 나와서 푸성귀도 같이 팔고 그래요.”

리어카에는 호박 한 상자, 미나리 한 봉다리 등을 잔뜩 실고 나오셨다. 젊은 사람들도 밀기 힘들 것 같은 무게의 리어카를 구부정한 허리로 10분 가량의 거리를 혼자 밀고 오셨다. 택주의 증조할머니는 올해로 일흔여섯이시다. 할머니께 정정해 보이셔서 100수 하시겠다고 말했더니 껄껄껄 웃으신다.

“우리 엄니 10년 더 사시면 좋지~ 오래 사셔야 할텐데… 그래도 큰 병치레는 없으셔요. 죄송한 건 내가 직접 모셔야 하는데 이웃집으로 사니까 내가 모시는 게 모시는 것도 아니지. 여지껏 시장 나오시고 하니까 이게 어디가 모시는거에요.”

어머니가 내려놓은 짐을 풀면서 택주할머니는 이대로 택주가 건강히 크는 것 밖에는 더 이상 욕심이 없다고 했다. 택주가 좋아하는 운동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공부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바르게만 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주가 더 이상 상처받지 말고 바르게 커주면 나야 감사하지. 택주한테 항상 미안해요. 해주는게 없어서…요즘엔 그저 같이 놀아주는 친구들이 기특하고 예뻐서 놀러오면 맛있는 거 사주고 하는데 더 친하게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지 어멈이나 아범이 합쳐서 택주 데리고 사는 날도 있겠죠? 나는 그거 하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