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당진항 " 新독립운동 "
천년의 역사를 다시 잇다
백제 벌수지현 당시부터 당나라와의 해상통로역할을 해온 곳. 당나라 문화유입이 가장 활발했던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로 가는 나루터'라 하여 지명까지 '당진'으로 바뀐 곳.
이제 천년만에 당진은 대륙을 잇는 항구로서의 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대북한·중국 무역의 전진기지라는 당진의 이름이 지금 평택항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 이름을 끌어 올리기 위한 신(新)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편집자주
얼굴없는 항구 이름없는 항구 당진항
외항선 수백척 드나드는 무역항 당진
1999년 4월 18일 오전 7시30분.
한척의 거대한 외항선이 당진 바다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배의 이름은 좥월드 엄파이어좦. 이 배는 지금 당진군 석문면에 있는 환영철강이 수입한 고철 3만5천7백톤을 싣고 미국에서 당진으로 오고 있는 중이다. 행선지는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에 있는 한보부두. 한보부두에는 이 배와 같은 3만톤급 대형선박을 댈 수 있는 선좌가 3개나 있다. 지난해만도 이 부두를 통해 수백척의 화물선이 드나들었다.
좥월드 엄파이어좦호에는 4명의 그리스인과 18명의 필리핀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은 하얀 머리칼의 중년남자 마르코폴로스 크리스토스(52세). 유창한 영어와 해박한 실무능력을 가진 승선경력 25년의 베테랑이다.
이 배가 대기지점인 입파도에 도착할 때쯤 선장은 도착예정인 항구를 향해 교신을 시작했다. 그런데 선장이 교신을 보낸 곳은 당진항이 아니라 평택항이었다.
그러나 당진항은 없다
왜일까? '당진항'이라는 명칭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드엄파이어호는 분명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한보부두로 가고 있는 길이지만 세계의 항구를 모두 알고 있는 이 선장조차도 '당진'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곳의 공식명칭은 엄연히 '평택항 한보부두'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도 경계선이 놓여있는 당진과 평택 앞바다는 지난 86년 평택항으로 고시된 이후 아무런 이의제기없이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선장의 교신이 접수된 곳은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에 위치한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평택출장소 2층의 평택항 관제실. 관제실과 교신을 마친 선장은 입파도에 대기하며 한보부두까지 뱃길을 안내할 도선사(파이롯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의 지시에 따라 몇시간 전에 인천항을 출발한 한사람의 파이롯트가 8시경 작은 선박을 타고 나타났다.
월드엄파이어호 왼쪽에 배를 대고 도선사용 사다리를 타고 오른 이 한국 사나이는 배가 한보부두에 도착하는 앞으로 두시간 동안 22명의 승무원과 46억원의 화물, 그리고 110억원짜리 선박의 안전을 책임질 사람이다. 이 파이롯트가 받을 도선료는 시간당 2백만원. 웬만한 중소기업의 매출이다. 이 사람은 더구나 인천에서 왔고 인천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도선료에는 이 사람의 운임까지 포함돼 더 높아질 것이다.
인천이 관리, 여건 나쁜 항구
월드 엄파이어는 약 1마일 거리를 두고 좥성구미좦를 통과하고 있다. 선장은 항로 옆쪽으로 수많은 어망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이 퍽 다니기 불편한 항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식 항구로서 대접받지 못하면서 당진의 부두들은 불법어망단속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태안해경이나 평택출장소 순시선이 감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심각하게 항로를 방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박회사들은 화물수입회사인 환영철강에 위험부담에 따른 요금가산을 요구하거나 보이지 않는 명목으로 요금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1톤당 1달러만 추가하더라도 3만톤이면 3천만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야간에는 위험부담이 더 커서 도선사들은 아예 당진부두에 들어오는 배에 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오후 늦게 도착한 배들은 입파도에서 꼬박 반나절을 묶여있어야 한다. 화물주인 지역업체들도 야간 하역작업을 할 수 없어 시간을 잃는다.
특히 배를 빌려쓴 선주일 경우 하루 1만달러의 용선료를 내면서 반나절을 허비하는 항구에 들어오길 좋아할 리 없다. 앉은 자리에서 5천달러가 깨지기 때문이다.
한보부두에 가까워지자 파이롯트는 예인선을 호출했다. 브레이크도 없는 어머어마한 배를 회전 또는 역회전시켜 부두에 충돌하지 않게 안전하게 대는 것이 예인선이 하는 일이다. 평택에 있는 예인선업체가 4,200마력의 엄청난 빠른 힘을 가진 예인선 두척을 보냈다. 파이롯트의 지시에 따라 예인선은 거대한 월드 엄파이어를 한보부두쪽으로 밀어부쳤다.
만일 예인선이 제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만에 하나 월드엄파이어가 부두에 충돌, 연료탱크가 찢어진다면 440톤의 연료가 유출될 것이며, 유출된 연료는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썰물조류를 따라 순식간에 아산만과 태안반도 일대를 뒤덮을 것이다.
열흘간 하역작업에 인력·장비 동원령
드디어 거대한 배 월드엄파이어가 한보부두에 안전하게 정착했다. 196m 길이의 이 선박이 현재 바닷속에 잠긴 깊이는 10m. 대형선 접안을 위해 부두를 만들 당시, 사리때라도 수심이 13.5m가 되도록 준설을 한 덕분에 배가 바다 밑바닥에 부딪칠 일은 없다. 만약 이 정도의 선박이 짐을 가득 실은 채로 바다 밑바닥에 닿을 경우 배는 두동강날 위험이 있다.
선박과 육상에서 모든 사람이 무전기로 교신하며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이미 부두 육상에는 화물하역에 동원될 항운노조원 40명과 굴삭기 8대, 화물운송을 위한 대형트럭 약 26대가 대기하고 있다.
지금부터 야간작업을 포함한 하루 24시간 작업이 열흘동안 계속 될 것이다. 하루 3천5백톤씩, 총 3만5천여톤을 배에서 내리기 위한 작업이다. 작업이 끝나는 10일 후 월드 엄파이어호는 다음 항해지로 떠날 것이다.
관련 기관·업체없는 ‘사각지대’
당진에 있는 부두에서 하역·하선을 위한 작업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항구로 지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화물검역과 선원 출입국관리, 세금관리를 위한 기관이 당진 현지에는 한 군데도 들어와 있지 않다. 다만 천안세관에서 두사람의 출장인력이 나와 있을 뿐이다.
관할청과 지역도 제각각일 뿐 아니라 멀다. 항만관리는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평택출장소가 맡고, 세관은 천안세관 소속이다. 검역은 군산검역소 대산지소에서 나오고, 법무부 출입국 관리업무는 대전출입국관리소 대산출장소에서 나와서 한다. 해양경찰청 업무는 태안해양경찰청 소관이다. 때에 따라서 이들이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 하역작업이 늦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이제 월드 엄파이어호에는 철제사다리를 타고 검역소, 출입국관리소, 선박대리점, 검정원, 하역회사 직원이 승선하였다. 군산검역소 대산지소 소속의 검역관이 선박의 위생상태를 점검한 후 검역증을 발급했다. 대전출입국 관리사무소 대산출장소 소속직원은 승무원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상륙증을 발급하였다. 상륙증이 없는 승무원은 부두 밖으로 못나가며 상륙증 없이 부두 밖으로 나가면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밀입국자가 된다.
하역회사 직원과 검량원은 물속에 잠긴 선박의 용적을 계산해 화물량을 체크하고 있다. 월드엄파이어의 선창에서는 화물소독작업이 한창이다. 혹시 고철에 묻어올지도 모를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소독이 끝나자마자 바로 하역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이 곧 돈이다. 월드엄파이어는 1시간에 50만원을 잡아먹는 배다. 선장은 마실 물과 선원들의 부식공급을 요청했다. 대산의 업체가 이를 공급했다.
연간 수백척의 무역선, 당진을 평택의 한 지역으로 알아
행정관할 다른 인천에서 관리, 관리 공백이나 다름없는 여건
선박수리업체 인천에서 오다
열흘이 지났다. 때는 4월 27일. 다음날 출항준비를 위해 바쁜 시간. 하지만 사고가 생겼다. 월드엄파이어의 2번 선창바닥 두곳이 찢어져 있다. 심각한 선체손상이다. 이 부위는 연료탱크의 지붕에 해당되기 때문에 용접할 경우 가스가 그대로 폭발한다.
선장이 수리목록을 작성해 하역회사에 제출했다. 손상부위 한쪽은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나머지 한곳은 하역작업 중에 손상된 것이므로 하역회사측에서 수리비와 체선료(수리 때문에 출항이 지체되는 데 따른 비용)를 전액 부담하라는 것이다. 금액은 무려 수천만원.
다음날 하역작업이 모두 끝나자 선박수리가 시작되었다. 인천의 수리업체가 장비와 인원을 싣고 한보부두에 도착했다. 수리비를 내야 할 하역사는 울상이지만 인천에서 온 수리업체는 한창 수입을 올리고 있다. 수리는 5월2까지 계속되었다.
배는 오고 가지만
당진에 남는 것은 없다
드디어 월드 엄파이어는 떠났다. 남은 일들은 해운대리점 업체가 처리하게 될 것이다. 매일 다른 배가 입항하고 출항하며 또 사람들은 움직이고 당진의 항구는 깊어간다.
월드 엄파이어는 세금으로 입항료 3백60만원과 접안료 3천4백60만원을 지급했다. 국세다. 또 도선료 2백40만원, 예선료 3백50만원을 당진부두에 뿌렸다. 그러나 그 돈을 가져간 곳은 인천과 평택이다.
여기에 대리점 이용비, 검정원, 수리업체 등에 지급한 비용을 합하면 모두 7천만원 이상이다. 뿐만 아니라 그 선원들은 인천시로 나가 쇼핑을 하고 숙박을 했다.
이 배가 딩진땅 한보부두에서 보름간 7천만원이 넘는 돈을 풀었지만 정작 당진의 기관이나 업체, 개인에게 남은 돈은 거의 한푼도 없다.
당진이 훌륭한 부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좥당진항좦으로 지정되지 않아 부대사업체들이 전혀 입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수익은 평택과 인천에 고스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적인 국제무역항 노릇을 하면서도 지역이름을 쓰지 못하고 좥평택항좦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상에 기록되고 있는 실상은 지역경제를 떠나서 지역민들의 자존심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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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항만의 실태와 문제점
당진은 평택항?
자치시대에 ‘잘못된 만남
당진은 6개선좌 3개 부두 가진 손색없는 항구
그러나 한보·동부는 평택항, 당진화력은 대산항으로 쪼개져
국내 28개 항구지역중 유일무이하게 자기이름 없어
3개의 자체부두와 그안에 6개의 선좌를 가진 당진항구가 평택항·대산항으로 쪼개지고 평택항·대산항으로 불리고 있다. 한보부두를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당진군청을 평택시청으로 오인할 정도다. 자치시대에 왠 이변인가?
군내 부두의 규모가 다른 항에 비해 작고 보잘것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인근 보령항은 선좌가 2개, 태안항은 1개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고대·부곡공단 조성이 마무리되고 석문공단조성이 본격화 될 경우 당진군내 부두시설은 무려 18선좌에 이르는 대형항구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이들 세 부두를 통해 드나든 무역선이 연간 250대나 되며 99년에는 400척 이상의 입항이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당진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인정하는 국제무역항이 아니라 국내·국제적으로 좥평택항좦으로 등록되어 있는, 평택항의 일부 시설물일 뿐이다.
당진의 부두를 드나드는 국내외의 어떤 업체나 업자도 당진이라는 이름은 사용할 일이 없다. 한달에 들어오는 외항선이 4척에 불과한 태안이 좥태안항좦으로 불리고, 당진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좥장항좦, 좥삼천포좦 등이 역시 항구로 불리는 것과 엄청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대산항이 군산항으로부터 독립해 크게 확장되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대산항은 일반부두 없는 파이프라인 항구인데도 지금은 지방해양수산청까지 주재한 광역항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현재의 평택항 항계를 성구미에서 석문면 교로리까지 대폭 확장, 광역항으로 대대적인 개발을 하기로 예정고시한 상태여서 당진항 독립은 지금이 아니면 아주 요원해질 위기에 처해있다.
항구없어 배 한척당 97만원 비용추가
연간 105억 타지역으로 흘러나가
고대·부곡공단에 입주해 있는 동부제강은 부두가 개설된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약 5만톤의 원료를 수입했다. 대개가 브라질, 중국, 일본 등 외국에서 들여왔다. 이 회사 물류담당 유선일 과장은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난감했다. 당진에 세관이 없어서 통관수속을 밟으려면 멀리 천안까지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물건을 배에서 내릴 수 있다. 수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천안에 다녀오면 오전 반나절은 그냥 허비하는 셈이다. 할 수 없이 관세사와 위탁통관계약을 맺었다. 시간대신 돈을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통관수속을 위탁해서 추가된 비용만 연간 7천만원~1억원이 된다. 세관만 가까이 있다면 고스란히 남을 비용이었다.
작년에는 한 외국선원이 중고차를 대량으로 사겠다고 했으나 지역에 세관이 없어 수출을 포기한 일도 있었다.
당진에 부두는 있지만 항만시스템이 없는데서 비롯되는 문제는 지역에서 수출입을 담당하는 기업의 활동에 이처럼 대단히 나쁜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 당진군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3천톤급 배 한척당 군내에서는 다른 항구보다 97만원의 추가비용을 내고 있다. 또 선박의 입출항에 관련된 기관·업체는 항만이 주재하는 인근 핑택·인천과 대산에 밀집해 있다. 당진지역에는 그에 따르는 연쇄적인 경제효과가 전혀없는 것이다. 오히려 연간 105억 가량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애초에 주민들이 갯벌을 포기하고 내어준 시점에서 생각하면 기껏 갯벌을 포기하고서 항만에 따른 경제적 효과까지 인근 지역(평택·인천)에 고스란히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지명상실에 따른 국제적 위상상실과 주민 정서적인 문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해운·무역문서에 당진대신 좥평택좦으로 기록된다는 것은 지방자치시대에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통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물류가 증가해 가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앞으로 당진의 국제화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