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께서 제자인 자공을 데리고 가다가 냇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지나가는 것은 이와 같이 냇물이 흐르는 것 같은 것이다. 밤낮없이 멎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묵은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오곤하는 것이 쉴 사이 없이 되풀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사도 같은 것이니라.”

보통 사람들은 “껄, 껄”하고 죽는다고 한다. 호탕하게 웃으며 죽는 것이 아니라 “무엇 무엇 할 껄”하고 후회하면서 죽는다는 말이다. 첫 번째 “껄”은 “더 베풀고 살 껄”이다. 죽는 마당에 자신이 왜 그렇게 인색하게 살았는지, 더 베풀고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통한의 후회인 것이다. 두 번째 “껄”은 “더 용서하고 살 껄!”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는데 용서하고 떠날 껄!”하고 후회를 하나 이미 화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은 것이다. 세 번째 “껄”은 “아, 좀 더 재미있게 살 껄!”이다. 이렇게 줄을 껄, 왜 이렇게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살았던가 하는 후회이다. 죽을 때가 되니 자신이 가졌던 것들과 그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시간은 다 흘러가고 돌이킬 수 없는데 말이다.

암 환자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 최후의 3,4주일에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화해하는 것인데 이것은 중대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훌륭한 인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나와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몇 년전에 세상을 하직하면서 생전에 희망한 대로 각막과 장기를 기증하였다.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도 못할 큰일을 하고 떠나간 그 사람이 커 보이고 또 더 커 보이는지 이제야 겨우 깨달은 듯하다. 존경이란 결코 폭력적인 힘이나 금전으로 쟁취하고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존경이란 존경할만한 행위가 가능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다.

자전거가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것처럼, 우리 사람들은 항상 머리를 활용해서 생활의 활력소를 키우지 않으면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인들을 편안하게 하여 드려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제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분들이다. 그 여생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 경로심(敬老心)은 곧 제 어버이를 섬기는 일과 다름없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그러면 내가 베푼 경로심이 그때 다시 나에게 되돌아 올 것이 아닌가. 노인들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야 한다.

우리 노인들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 노인들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무엇이든 해야 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