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며

김성기

합덕대건신협 이사장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모순투성이의 잘못된 세태를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몰라 힘들어 하고 있다. 한 시대의 문화양상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에 잘 나타난다.

요즘 사람들은 곧잘 원조, 자연식품, 자연산 등의 옛 것에 대한 바램이랄까 변질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면 인간사회는 태초에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자기들이 발전시켜온 사회안에서 그것에 대해 만족하기 보다는 옛 것의 원형 그대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 옛 것 그대로가 물질이나 생명 그 자체의 본 모습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모습안에는 자연의 섭리가 있고, 그 자연의 섭리는 조물주의 창조개혁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꾼다면 무한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이룩된 창조물 안에서 자연의 일부인 사람들이 발전이나 변형 등은 야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천년이 되면서,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해를 맞게 된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신앙인들의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해 세상의 누룩과 소금의 역할을 할 신앙인들이 무수히 많은데 세상은 어찌 이토록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선으로 포장된 분열과 이기심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분명 하느님 아버지의 조건없는 사랑을 전해주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이 해를 거듭하면서 조건과 실적을 따지는 이른바 조건있는 사랑이 되어버렸다.

신앙인들마저도 그 사람의 내면은 외면한 채 외적인 모습에만 가치기준을 둔다면 세상은 쉽사리 변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인간 그 자체이기 대문에 그 생명의 존재가 그대로 가치가 있다 하겠다.

우리는 언제부터 소유욕의 노예가 되었는지... 잘 나가는 정치인 아무개와 막역한 사이라고 해서, 이렇다 하는 재산가라고 해서, 명문대 출신이라고 해서 하느님 앞에 특별한 차등이 주어져선 안될 것이다. 어째서 외적인 모습에 그다지 치중을 하는 걸까? 우리는 이런 틀에서 왜 탈출을 못하고 있는 걸까?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인간의 본 모습을 찾을 때다.

하늘 아래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평등한 아들과 딸들이다. 어느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살다가 실수하여 교도소에 다녀온 이도, 사업에 실패하여 빚에 쪼들리는 이도, 죄를 지어 도피 중에 있는 이도 구원과 해방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 햇빛이 온누리를 골고루 비추이듯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영역은 무한하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 그 자체가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를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이 바로 나의 아픔과 고통이고, 이웃의 행복과 평화는 곧 나의 행복이요, 평화이다. 평등하고 조건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정확히 이해하며 이웃과 모든 것을 공유하며 새 세기를 기쁘게 맞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