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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톤이 넘는 200미터 길이 줄을 사람의 손으로 꼬아 만드는 기지시줄다리기. 본지는 중요무형문화제 제 75호 기지시줄다리기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기지시줄다리기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봤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줄다리기를 지켜나가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가 연재된다. 올해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는 4월7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나 어릴 적에는 논일을 할라치면 무조건 농악대가 함께 했었어. 그걸 두레풍물이라고 하는데 논을 멜 때 어려우니까 힘을 주려고 농악대가 흥이 나도록 돕는 거야. 15살 되던 해부터였을 거야. 두레풍물대 꽁배(마지막)에서 작은 북을 치기 시작했던 게.”

해오름농악대 상쇠 김영수(72) 씨가 50년이 넘은 옛 기억을 어제일마냥 생생히 떠올렸다. 어려웠던 시절 남의집살이도 적지 않게 했더랬지만 김영수 씨는 농악대를 쫓아다니며 북을 치던 때가 참 “재미났다”고 말했다.

“기지시줄다리기에서 농악대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45년이 넘어가고 있지. 그때는 짚을 각 마을에서 가지고 나왔었어. 잡아당길 동아줄도 죄다 마을에서 만들어서 이고 나왔지. 줄다리기가 시작될 때면 마을마다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대가 따라 나왔어. 요새는 사람들이 몸을 사려.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을 다리잖아.”

김영수 씨는 기지시줄다리기에서 농악대가 없으면 앙꼬없는 찐빵과도 같다며 농악이 없으면 줄다리기에 신명도 안나고 힘도 안날 것이라고 말했다.

“줄다리기에서 농악대의 역할은 크게 두 개야. 우선 농악을 쳐서 사방에 사람을 불러 들이는 역할을 하지. 줄다릴 때가 됐음을 알리는 거야. 그리고 줄을 다릴 때 힘을 낼 수 있도록 농악을 울리는 거지. 농악이 없으면 쓸쓸하고 힘도 안나. 신명나는 꾕과리, 북, 징, 장구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야 줄을 당길 때 더 힘이 나고 재밌어지지.”

김영수 씨는 요즘도 농악소리만 들리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고 말했다. 농악이 왜 좋으냐고 묻자, 이유가 없단다.

“나도 이유는 몰라. 예전부터 그렇게 농악이 좋았어. 취미가 된 거지. 농악소리만 들리면 엉덩이가 들썩들썩해. 지금도 농악소리가 들리면 가서 보기라도 해야 해.”

구자동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장은 김 씨를 충청, 경기 농악을 일컫는 웃다리농악에서는 최고로 꼽히는 상쇠라고 말했다. 서산, 당진에서는 김영수 씨만큼 순수한 웃다리농악 상쇠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김영수 씨는 “요즘에는 농악에 기교가 많아져 순수한 농악은 많이 사라졌다”며 더불어 농악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요새는 후배들 양성에 노력하려고 해. 이제 나이도 있고 조금씩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지. 예전에는 농협이며 학교에서 무료로 학생들도 가르치곤 했었어. 요즘에도 물론 줄다리기박물관에서 수업을 하지만 점점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걱정이야.”

김 씨는 농악도, 기지시줄다리기도 옛 전통의 명맥이 끊이지 않고 앞으로도 잘 보존되길 소망했다. 후배들이 순수한 농악의 전통을 잘 이어주고 젊은이들이 농악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