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은 살기 좋고 또 풍요롭고 인심 좋은 고장으로 예부터 선비정신이 깃들인 고장이다. 김대건 신부의 탄생 지역이기도 한 조선 왕권시절에 불의에 바른 소리를 하다가 역적으로 몰리면 한강의 나룻배로 겨우 몸을 실어 피신해 숨어 살던 곳이며, 천주교 박해 시 신자들이 많이 숨어 살던 지역이다. 이분들이 양심과 영혼이 고목나무의 그늘처럼 지역을 건강하게 지켜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군민들은 요즘 허탈감에 빠져 있다. 민선으로 뽑아준 군수(민종기)가 전국 시장군수 중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비리에 연루되어 전국 지상파 방송을 타면서 군민들은 그동안 떠도는 소문을 그럴 리가 없을 거라면서 그래도 군민들이 뽑아준 군수를 신뢰하고 감싸 주었다. 군수의 추종세력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고 일전에 국민권익위원회 이재오 위원장님께서 당진을 방문해 군수와 유지들과의 대화에서도 당진 모 유지는 민종기 군수는 일 잘하는 군수로 일하다 보면 잘못된 부분도 조금은 있을 것이라면서 이런 훌륭한 군수를 한나라당에서 공천해 줄 것을 공식석상에서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 당시 시점은 당진군수를 감사원 감사한다는 소문과 오래전 퍼져 있을 때이다. 이렇게 내놓으라 할 유지도 민종기 군수를 감싸 주고 추종하였으나 그에 대한 결과는 한나라당 공천에 후보로 되어 거창한 사무실과 선전물을 부착하고 며칠이 안 되어 공천 취소 결정됐다. 당진군민들은 열린우리당, 또 민주당 두 번 공천되어 당진군민들은 군수로(민종기) 두 번 씩 뽑아 주었다.
하지만 민종기 당진군수는 당진이라는 커다란 고목나무에 기생해 사는 진딧물처럼 군민들에게 개발이라는 미끼로 당진의 영혼의 불꽃을 어두움으로 덮어 버렸다. 한 마디로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역의 유지들은 민종기가 돈 나와라 뚝딱하는 돈 방망이를 든 도깨비 민종기(군수)로 알았고, 민종기(군수)를 추종하는 유지들은 각종 사회단체장이나 각 위원회 위원장을 서로 맡으려고 아첨하는 추종자로 전락됐다.
묻는다. 당진을 사랑하는가? 영혼이 있는가?
당진에 영혼이 살아있는 유지, 당진인이 있는가? 다시 묻고 싶다. 이제 민정군수를 뽑는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2010년6월2일말이다. 군민이여, 신뢰할 수 없는 군수를 따르고자 하는 주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민선군수는 추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추종자들은 군수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고 있다 할 것이다. 군수는 그런 점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당금질’해야 하는 자리라 하겠다. 그 기법을 쌓는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허물어지는 데는 단 몇분, 몇초도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군수의 자리는 중요하다. 군수의 자질은 오히려 평범한 데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신뢰하고 믿었던 (일 잘하는 군수 등) 민종기 군수의 배신감을 경험했다.
신뢰라는 것은 군수로서 언행을 일치하고 있다는데 대한 확신이다. 그것은 아주 낡은 표현방식인 성실이라는 것에 믿음이기도 하다. 군수의 행동과 그 신념들은 일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적어도 서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 군수가 카리스마에 의존하면 잘못된 행동을 하도록 하는 원인이며 그것이 군수를 오만한 존재로 만든다. 아첨하는 잘못된 지역 유지들이나 추종자들, 이권에 눈이 어두운 자본가들만이 득실거릴 뿐이다.
그러나 민종기 군수가 현명하였더라면 어떤 타협이라도 그것을 받아 드리기 전에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또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여 곰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현 시점에서 당진군수 산하 공직자들은 엄청난 일을 경험하였다고 본다. 이들 중에는 허탈감, 배신감, 불안감, 초조한 신경 만족감, 설명은 하지 않겠다.
각자가 어느 곳에 속하는가 이제 다 털어 버리고 오직 나는 공직자다라는 자세를 일진하여야 한다. 현재 박 부군수의 군수대행으로 공무원 사기를 돋아주고 지방행정 능력이 있는 편한 군정을 어려울 때 군민이 편하게 군정을 해줘 주민들의 찬사를 보내며 이제 공직자들의 사기를 군민들이 노력할 때다. 앞으로 당선될 군수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민정군수의 첫번째 과업은 분명한 소리를 내는 나팔수 역할, 올바른 군수의 여부는 그가 타협하는 것이 그의 사명 내지는 목표와 양립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올바른 군수(진정한 추종자vs위선적 기회주의자 보유 여부)의 판단은 그가 정한 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