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커덕, 철커덕”

날실이 씨실의 아래위로 오간 뒤 씨실을 치는 바디집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의 적막을 규칙적으로 울린다.

이정의(67) 씨는 오늘도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베틀 앞에 앉아 베를 짠다. 젊었을 때 농한기에는 하루 꼬박 베틀 앞에 앉아 있었지만 요새는 조금씩 힘에 부쳐 예전만큼 삼베 짜는 일에 몰두하진 않지만 여전히 많은 시간을 삼베 짜는 일로 보내고 있다. 이씨는 삼베 옷감을 주로 만들지만 수의를 집에서 직접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삼베옷이 생소하겠지만 이씨가 젊었을 때만해도 여름이면 삼베옷 장만하는 일이 연례행사와도 같았다. 특히 삼베마을로 지정될 만큼 청삼재배농가가 많았던 고대면 슬항리에서는 대부분의 집에서 직접 재배한 삼베로 옷을 만들어 입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옛날에는 삼베가 여름의복이었잖아요. 삼베를 짤 줄 아는 집에서는 직접 해 입기도 하고 만들어 팔기도 하고 했었죠. 여름에는 삼베가 최고예요. 그 이상 더 좋은 옷이 없죠.”

이씨에게 삼베자랑을 해달라고 했더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삼베만의 장점을 읊는다.

“우선 무엇보다도 시원하죠.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는데 삼베는 땀을 잘 흡수해서 피부가 끈적이지 않게 해줘서 시원하죠. 또 삼베는 썩고 부패하는 것을 방지해줘요. 옛 어른들의 지혜를 보면 참 놀라워요. 삼베가 부패방지기능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아셨는지 음식을 덮어두는 용도로 삼베 천을 사용하셨죠. 나일론으로 만든 옷은 땀이 나면 쓸려서 피부에 안 좋은데 삼베는 흡수력이 강하니 피부에도 굉장히 좋죠.”

이씨가 삼베를 짜기 시작한 것은 스물여섯 살 되던 해였다고 한다. 그 뒤로 청삼을 기르고 삼베옷을 짜는 일을 쉬지 않았으니 꼬박 40년 동안 길쌈을 해온 셈이다.

“처음에는 주변 어른들이 모두 길쌈을 하시니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죠. 처음에 배울 때는 베테랑 어른들이 삼고 떨어진 잔 실을 주어서 삼삼는 법을 배웠어요. 잿물에 삼을 삶는 건 수년간에 걸쳐서 배웠어요. 단숨에 배워지는 게 아니거든요. 몇 해에 걸쳐서 반복해서 지켜보고 해보면서 배우게 되는 거지요.”

요새야 실을 뽑아 천을 만들고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것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만 삼베는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길이 닿아야 하는 수공예인 것이다.

삼베를 만드는 과정은 모두 18단계다. 청삼을 심어 가꾸는 것부터 시작해 삼베옷감을 만드는데 꼬박 1년이 걸린다. 3월20일경 파종을 시작해 길쌈이 시작된다. 심고 가꾼 삼은 6월말에서 7월초에 수확한다. 거둬들인 삼은 삶아서 껍질을 벗긴 뒤 햇볕에 말린다. 그 다음은 일정량을 묶는 심목잡기, 끝을 간추려 묶은 삼은 물에 담가 불려 망치로 두드리고 나머지 부분을 훑어서 가늘게 찢는다. 이를 두고 삼째기라 한다. 가늘게 찢은 삼은 다시 햇볕에 널어 둔다. 일종의 표백효과가 발생해 삼이 하얗게 바래면 본격적으로 길게 실을 만드는 삼삼기가 시작된다. 무릎 살에 올려놓고 실을 길게 연결하는 것이 삼삼기라 한다. 길게 만들어진 실은 물레질로 실타래를 만들고 양잿물을 묻혀서 뜨거운데 24시간 두었다가 삶아서 잿물을 빼낸다. 그리고는 다시 쌀겨에 5시간 가량 담갔다가 다시 말린다. 다 마른 실타래를 풀어서 올이 끊어지는 부분없이 삼밥을 만든다. 그리고는 다시 삼날기, 베매기라 불리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드디어 베틀에 넣고 삼베를 짜게 된다. 베틀에서 삼베를 다 짰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다 만들어진 천은 다시 양잿물에 삶아서 표백과정을 거치고 양잿물이 빠질 때까지 깨끗이 빨아 다듬이질을 해야 한다.

길쌈과정을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이씨가 처음 한 말은 “18과정을 모두 다?”라고 되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간추려서 해주는 설명도 한참이 걸렸다. 말로 하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길쌈이니 실제로 뜨거운 불 앞에 앉아 베매기를 하고 양잿물에 삶고, 삼째기를 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이 필요한 지 감히 짐작도 가질 않는다.

“베매기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요~”

이씨가 웃으며 던지는 말인데도 길쌈의 고된 과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전통을 잇는다는 마음으로

젊었을 때는 이왕 익힌 기술이니 부업으로 아이들 학비에 보탤 요량으로 길쌈을 했단다. 이씨는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베틀 앞에 앉아 길쌈을 했다. 틈틈이 길쌈을 해서 아이들 대학교 등록금도 내고 학비에도 보탰다. 자식들도 모두 장성해 더 이상 학비를 보태지 않아도 되는데도 이씨는 길쌈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이제 그에게 길쌈은 “안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힘도 들고 수입도 안 되지만 그래도 전통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놓을 수가 없어요. 고대면 슬항리가 삼베마을로 지정된 지 이제 10여년이 흘렀죠. 제가 삼베마을 대표인데 길쌈을 놓을 수가 있나요. 요새는 모든 면에서 옛 것이 자꾸 잊혀지잖아요. 옛 것에는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가 담겨져 있는데 잘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참 신기하지 않아요? 어떻게 삼 껍질을 벗겨서 옷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매번 생각해도 놀라워요.”

요즘에는 슬항리 근방을 통틀어도 삼베 짜는 집이 20농가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씨는 길쌈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두 번째로 젊다고 한다. 이씨는 올해로 67세다.

“젊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질 않지요. 돈도 안 되고 힘이 드니까요.”

얼마 전에는 기능보유자로 등록해서 전통을 이어볼까 했지만 그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신청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더라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농사만 짓고 살아온 제가 혼자 하기에는 엄두도 안 나는 일이더라고요. 기능보유자로 등록이 되면 어떻게든 후계자를 만들어서 명맥을 이어갈 텐데... 어려운 일을 누구더라 하자고 하기가 참 쉽지 않아요.”

이씨는 자신의 세대에서 슬항리 길쌈의 전통이 끊기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요즘 그녀는 길쌈을 알리고 삼베의 좋은 점을 홍보하기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7월 초에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청삼 체험행사를 열기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

“삼베 홍보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안 간 곳이 없어요. 요즘 사람들이 삼베옷을 많이 입고 옛 조상들의 지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