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진시대가 창간 17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당진시대는 지역의 굵직한 사건 현장을 누비며 지역의 현안을 발굴하고 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동시에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 형성과 이웃들의 사는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도 꾸준히 해왔다. 10여년간 한자리에서 국수를 팔아온 할머니의 부엌, 들판에서 땀 흘리며 먹을거리를 길러온 농부의 오후, 불치병을 이겨내고 있는 아이의 사연, 고물장수의 인생 이야기 등 작고 소소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기사는 당진시대가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빛바랜 지면 속 그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미 천의시장 풍미식당 김씨 할머니는 아직도 칼국수를 2천원에 팔고 있을까, 송산농협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지숙씨의 수줍던 포부는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왕건야식 김 일 사장님은 아직도 포니를 타고 다닐까? 추억 속 이웃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고대면 옥현리에 사는 이시용(96세)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여섯 되신 고령의 어르신이다. 백세를 내다보는 나이인데도 다부진 몸 어디 하나 굽은 데 없이 정정하고 꼿꼿하시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인데 귀에다 가까이 대고 말하면 그 또한 다 알아들으신다.

먼저 세상을 뜬 부인의 기일이 몇 년 몇월 몇일인지, 자신이 몇 살 때 무슨 일을 했는지 일일이다 헤아리면서 얘기할 만큼 기억력도 또렷하다. 논밭을 가꾸는 일도 장정 못지않게 거뜬히 해내시고 갑갑증이 생기는 낮시간에는 자전거를 꺼내타고 휭하니 당진읍내까지 다녀오는 일도 할아버지에게는 그저 예삿일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게 무위(無爲)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진대 백순(百旬)에 가까워진 이시용 할아버지는, 온갖 생각과 채우지 못한 욕망에 대한 집착들로 가득차 술렁이는 우리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사뭇 다른 세계에 사는 분 같았다.

<2007년5월28일자 664호 기사발췌>

이시용 할아버지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한 마을 이웃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시용 할아버지, 아직 옥현리에 계시죠?”

백세를 두 달 남긴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기가 어쩐지 조심스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던진 질문. 돌아온 답은 무안할 만큼 시원했다.

“그럼! 여전하시지! 자전거 타고 나들이 다니시는 것도 그렇고!”

4년 만에 다시 찾은 할아버지 댁은 비어 있었다. 집 앞을 서성이고 있자니 길 가던 동네분이 “며느리도 할아버지도 모두 당진 장에 갔다”며 “오후에 다시 와야 할 거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다시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집 옆 비닐하우스에서 콩을 털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 앉아, 예전에 보도됐던 신문을 보여드리니 활짝 웃으시며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무척 반가워 하셨다.

“기억하고말고. 기자가 와서 자전거 타는 사진 찍어갔었지. 세상에 이게 아직도 남아 있었나 보네.... 신기하구만!”

할아버지는 요즘에도 4년 전과 같이 이른 아침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정돈하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루도 여전하다. 아침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에 조반을 드신다. 소식(小食)도, 때를 놓치지 않고 드시는 것도, 음식 남기는 법 없으신 것도 예년과 같으시단다. 식사 후 소일 삼아 집 앞 텃밭을 돌아보거나 당진읍에 나들이를 가는 것도 그렇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이날도, 당진읍에 나가 점심을 하고 오셨다.

“오늘은 시곡리 사람들이 사줘서 당진읍에서 점심 먹고 왔지. 내가 당진장에 가면 사람들이 서로 점심을 잘 사줘. 이따금 내가 사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큰며느리 김창남(78) 씨가 시아버지 식성을 일러준다.

“밥을 남기는 법이 없으셔요. 아침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식사를 하시고, 술은 입에도 안대시죠. 바지락국을 특히 좋아 하시고요.”

일찍 남편을 여의고 백세에 가까운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며느리 김창남 씨도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더러 이웃들 중에는 백세라 보기 어려울 만큼 정정한 이씨 할아버지 만큼이나 홀로 시아버지를 보필하며 사는 며느리 김씨도 놀랍고 대단하다고 말한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자 할아버지는 까마득하게 어린 기자 손을 잡으시며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이르셨다. 사람은 마음씀이가 첫째이고 돈보다는 건강이 중요한 거라며, 돈은 둘째이니 돈 번다고 몸 상하게 하거나 돈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어서 잘 되는 사람 본 적 없으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