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전 구한말의 전설적 바둑고수였던 ‘백남규’의 고향이 당진임을 밝힌적이 있다(당진시대, 월간바둑) 백남규는 독립신문 매일신보등에 수없이 등장할 정도로 당대의 고수이자 저명인사였다. 백남규는 면천 양유(순성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출중했던 재능을 억제치 못하고 조선팔도를 떠돌며 바둑고수들을 찾아 다니며 끝내 당대의 최고수가 된 사람이다.

백남규는 당시대에 일본프로기사인 응금준일과 국가대항전을 벌인 사람이다. 응금준일은 가리가네 준이찌(膺金準一)로 일본 현대바둑에서 세고에 겐샤쿠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가리가네 준이찌는 ‘본인방 슈에이’가 사상회(四象會)를 만들어 방원사와 맞설 때 사상회에 가담했고 훗날 슈사이, 겐샤쿠 등과 함께  일본기원을 창설한 엄청난 인물이다.

이 가리가네 준이찌가 20살 되던 해에 구사카(日下義雄)라는 금융인을 따라 경성에 건너와 조선바둑과 승패를 겨루기를 원했고 당시  대국자가 백남규(白南圭)다. 백남규는 김만수, 이규완 등 구한말의 국수급들의 대통을 있던 고수로 '노사초'의 스승겸 선배가 되는 사람이다. 경상도 함양은 노사초를 기려 기념관과 매년 바둑대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한다.

어쨋든 바둑은 금기서화(琴碁書畵)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문화트렌드로 기능해 오면서 오늘날 한국이 세계바둑의 최강국이 된 바탕중의 하나였다. 백남규를 배출해낸 당진의 바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일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요란 떨지 않고 묵직하고 은근하게 저변을 넓혀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것이 정적인 바둑의 덕목과도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정중동이란 말이 있다.

조용함속에서도 무엇인가가 기운생동 하는 것이  정중동이라면 요즘의 당진바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동안 당진바둑은 ‘원석회’를 중심으로 조용하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 왔는데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맞았다. 작금의  당진에서 한국을 뛰어 넘어 세계를 놀라게할 바둑 인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박영롱(21)이 주인공이다. 당진이 고향(석문출생 부친 박용빈52세)인 박영롱은 당진 바둑인인 박재웅(아마6단)에게 바둑을 배워 한국기원 연구생에 들어가 프로를 꿈꾸던 꿈나무다. 그 박영롱이 얼마전에 벌어진 세계의 프로 아마들이 총출동하는 세계대회에서 다섯명의 프로들을 꺾고 32강 본선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박영롱에게 나가 떨어진 프로들은 최철한, 서무상, 이춘규 등이다. 최철한은 상금액수만 백만불인 당대 최고기전 ‘잉칭기배’의 현재  타이틀자다. 박영롱은 2010년 한국아마바둑 랭킹 1위로  프로입단 대회를 치르는 중이다. 내년 프로 입단이 유력하다.

이러한 때에 얼만전 당진에 바둑연구소 하나가 개설되었다. 국내 아마바둑대회 10회 이상 우승자였고 세계아마바둑대회 우승한 경력도 있는 박성균(아마 7단)이다. 박성균을 당진으로 불러온 사람이 박영롱을 발굴해낸  박재웅이다. 바둑문화를 이해하고 인재를 아끼는 인간적 덕목이 창출해낸 성과다. 박성균은 바둑문화연구와 특히 꿈나무 발굴에 탁월한 성과가 있는 사람으로 당진바둑에 큰 바람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생각된다.

박영롱이 프로에 입단하여 당진을 만방에 알리기를 바란다. 물론 당진 군민들도 그에게 아낌 없는 성원과 응원이 필요할 것이다. 박영롱의 선전과 바둑연구소의 활발한 활동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당진바둑은 물론 당진문화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