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11월2일자 독립신문은 눈길을 끄는 기사 한꼭지가 있다. 양면이 전부인 지면에 사진도 쓰지 못하던 신문에 양국국수(兩國國手)라는 타이틀로 한일간의 바둑최고수의 만남을 보도하고 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 창간한 이 땅의 최최의 순한글 신문으로 대한제국의 탄생과 함께 주목받던 매체다.
(양국국수. 일본 응금준일씨는 바둑 잘 두는 국수로 유명한데 대한에 와 국수를 겨루고져 한국국수 백남규와 진고개 피성관에서 10월29일 밤에 대국을 했고 백씨도 잘 두더라.)
2면에 불과한 신문이고 보면 이 기사의 비중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기사는 일본의 국수가 방한하여 한국 국수와 대국을 했고 장소와 날짜를 특정하고 있다. 한일간의 바둑 쟁패기에 나선 기사는 백남규와 응금준일이고 승패의 결과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응금준일은 가리가네준이찌로 일본 현대바둑에서 세고에겐샤쿠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가리가네준이찌는 이미 15세에 ‘본인방슈에이’가 사상회를 만들어 방원사와 맞설때 사상회에 가담했고 훗날 슈사이, 겐샤쿠 등과 함께 일본기원을 창설한 가단치 않은 인물이다.
이가리가네준이찌가 20살 되던 해에 구사카라는 금융인을 따라 경성에 건너와 조선 바둑과 승패를 겨루기를 원했고 상대 대국자가 백남규다.
백남규는 김만수 이규완 등 구한말의 국수급들의 대통을 있던 고수로 ‘노사초’의 스승겸 선배가 되는 사람이다. 독립신문은 한일간의 최정상급 고수들의 국제대국을 특종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날 백남규와 가라가네준이찌는 순장식으로 대국을 했는데 이날이 1899년 10월29일 밤이니 1901년 3월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이인직과 하라3단의 순장대국 기보보다 2년이 빠른 것으로 간단히 한국바둑사의 연보 하나가 교정된 셈이다.
이인직이 1901년에 일본에서 일본프로와 둔 순장식기보는 일본학자들의 논문에 수회 소개되고 인용된 것으로 10여년전 국내에 실체가 알려져 새삼스런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기보가 이땅에서 발굴된 최고의 순장식 기보니 뭐니하는 말은 조금 낮뜨거운 것이다. 가라가네의 자서전속에 백남규와의 기보가 수록되어 있음에도 그런 소리를 하는 연구자와 받아 대서특필해 주는 언론이 만든 작품(?)이다.
연구자가 이인직의 기보에만 흥분하지 않고 백남규와 가리가네의 기보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백남규와 가리가네준이찌의 에피소드는 가라가네의 자서전에 나온 것들이다. 가라가네는 자신이 백남규를 순장으로 2점, 일본식으로 세점까지 접었다고 자화자찬을 한바있고 기보도 수록하고 있다. 가리가네가 한국에 와 한국의 고수들과 바둑을 둔 사실을 자신의 자서전에 수록했고 이것이 독립신문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증거하는 장면이 멋지다.
백남규는 근대의 전설적인 고수다. 그의 고향이 부여 또는 당진으로 구전되어 왔으나 필자는 수원 백씨 족보에서 당진 출신임을 확인했다.
그는 ‘진위’현감을 지낸 엘리트기도 했다. 불과 백년전의 사람의 생몰년대와 간단한 이력도 밝혀주지 못하던 후세인들의 무지와 무관심이 그저 안타깝다. 사람은 가도 기록은 남는다. 바둑인 백남규, 그는 최고의 한시대의 최고수답게 최고(아직까지는)의 순장식 기보도 남긴 사람이다.
※이청(49)씨는 청양 출신으로 지난해 4월 당진읍으로 이사를 왔다. 아내 정수미씨는 면천 성상리 명성 부동산에 근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