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신리성지(전담신부 김성태)에서 지난 12일 김성태 신부 주례로 성, 위앵(위앵 마르틴 뤼끄 : Huin, Martin Luc) 민(閔)신부의 유해를 모시고 순례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성, 위앵 민 신부는 1861년 6월 29일 랑그르 교구에서 사제수품을 받았고 파리 외 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65년 5월 27일 복음을 전해야할 사제로 신리에 첫발을 디뎠고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를 만나 성체축일까지 함께했다. 10리 떨어진 황무실(현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로 가면서 “이것이 나의 성체거동 이었습니다”라며 성체 찬미가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성체성사 안에서 이땅에 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 성, 위앵 민 신부는 1866년 3월 11일 체포된 조선교구5대 교구장 안 돈이(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서신을 받고 예산 거더리에 가던 중 동년 3월 12일 스스로 잡혀 1866년 3월 30일(주님수난 성금요일)에 보령 갈매못에서 다블뤼주교와 오매트르 신부, 황석두(복사), 장주기(회장)과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 했다.
또한 1968년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성인반열에 들었다. 볼모로 잡힌 교우들을 위해 스스로 잡혀가고 순교한 후, 잡혀간 날이 되는 지난 12일 145년 만에 신리성지 성당에 유해가 모셔지게 됐다.
김성태 신부는 감사미사 중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성광에 모셔진 유해에 친구(親口))를 허락하고, 강론에서 “나는 젊어서 죽는것도 칼을 받아 죽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다”며 “그러나 저 불쌍한 영혼(조선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아무 일도 못하고 죽는 것이 괴롭다”고 형장으로 가며 성, 위앵 민 신부가 남긴 유언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