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천안시 서북구 노비타에 마련된 야구장에서 하나마이클로와 경기를 벌이고 있는 충남데프콘야구단 심성보(38)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당진군 합덕읍이 고향인 심성보 감독은 합덕초등학교에서 투포환 던지기 선수로 활동했다. 야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종목 선수로 활동하던 그는 중학교 진학을 앞둔 상황에서 당시 체육교사의 추천으로 야구를 처음 접하게 됐다. 야구를 시작하기 위해 천안 남산초로 전학을 결심했고 그의 야구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교 시절, 팔꿈치 부상 때문에 투수의 꿈을 접고 타자로 전향한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대학과 실업팀이 겨루는 백호기 대회에서 7할대 타율에 단타보다도 많은 홈런을 때려내며 ‘괴물타자’로 떠올랐다.
국가대표 4번 타자에 이어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시작한 프로무대. 비록 기대만큼은 못했지만 90년대 후반홈런 24개를 날리며 김기태, 김광림, 박철우 등과 쌍방울의 ‘공포의 좌타선’을 구축했다.
그런 그가 ‘당뇨’라는 청천벽력을 맞은 것은 98년이었다. 할머니로부터 아버지, 삼촌, 고모까지 차례차례 쓰러뜨려 수시로 혼수상태로 허우적거리게 했던 당뇨라는 그림자가 결국 그를 덮쳤다.
“아버지, 삼촌 두분, 고모 다 당뇨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당뇨병에 걸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운동하는 놈한테 당뇨가 오겠냐 싶었죠. 한달만에 20kg가 빠졌어요. 자고 일어나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는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배부른 자족을 위해서가 아닌 하루하루의 밥벌이를 위해 이를 악물었고 힘없는 손끝을 모아 쥐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는 당시 혈당량 500에서 600을 오르내리는 심한 당뇨증상 속에 10kg가까이 살이 빠져 병색이 완연했다. 운동에너지로 쓰여야 할 당분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당뇨는 직업 운동선수의 의지력과 투혼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훈련을 통해 체력을 기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고 하루하루 버텨나가기도 힘든 허기와 피로감 속에서 장기레이스는 너무나 잔인한 시험대였다.
야구로 울고 야구로 재기
당뇨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며 투혼을 불사르던 그였지만 결국 2003년 그라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쌍방울을 인수한 SK로부터 방출됐고 LG와 삼성을 거치면서 선수로 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더 이상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계속하고 싶었어요. 마흔살이 넘어서까지. 마음뿐 아니라 몸도 시켜만주면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모두 심성보는 끝났다고 하니까. 은퇴가 아니라 잘린 거죠.”
은퇴 이후 심성보 감독은 야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려 했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야구인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야구를 등지고 다양한 개인사업을 시작해 봤지만 손 대는 사업마다 실패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는 아픔도 겪었다. 프로야구선수로서의 자존심도, 재산도 잃어버렸다. 야구인 특채로 중소기업에 입사했지만 할 줄 아는 일이 없어 1년도 지나기 전에 제 발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야구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1년도 안되는 직장 생활이 더 힘들었습니다. 야구 할 때는 야구만 잘 하면 모든게 해결됐는데 사회에 나오니까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죠.”
하지만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건 야구였다. 이혼했던 아내와 2005년 재결합하면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한참 전성기를 보내고 있을 때 이혼했던 아내는 자신이 가장 추락해 있을 때 돌아왔다. 훌쩍 자란 딸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다. 이어 2009년에는 천안지역사회 아구팀인 충남데프콘 야구단 감독겸 선수로도 활동중이다. 현재 그는 180㎝의 키에 63㎏에 불과왜소해 보이는 체격이다. 짧았던 만큼 아쉬움도 미련도 많았던 그의 야구인생은 야구로 성공해 야구로 울고 야구로 재기했다.
천안시 부대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대형 실내연습장과 실외 잔디연습장을 갖춘 야구아카데미 성보에스페로베이스볼센터를 개설하며 야구인들과 교류에 나섰다. 심성보 감독은 “그동안 야구가 싫어서 별 짓을 다 해 봤는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야구 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청각장애 선수 지도 남다른 의미”
그는 지난 2006년 충주 성심학교의 청각장애 선수를 대거 채용해 ‘피닉스야구단’을 만든 STS반도체통신에 감독으로 부임하며 방망이를 다시 잡았다. 그에게 청각장애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배운 게 야구밖에 없는데 이런 기회를 줬으니 고맙죠. 물론 나와는 다르지만 가슴 아픈 것은 똑같아요. 그래서 흔쾌히 승낙했죠.”
물론 이들을 지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열의만 있었지 선수들이 야구에 대해 이해도 하지 못했고 집중도 하지 못했다. 엉뚱한 플레이가 경기나 연습 때마다 매번 반복됐다.
“회사에 수화하는 분이 있어서 도와주긴 하지만 말도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내 입모양을 보면서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것을 볼 때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해요.”
그는 직장생활보다는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밤을 새고 낮에 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이들이 운동만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