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인 태평양전쟁 당시 나의 백부께서는 열일곱의 나이로 1941년초에 강제징용 당하고, 두살 아래였던 부친께서도(현재85세) 늘 강제징병 또는 징용에 차출될 것을 온가족이 숨죽이며 두려워하는 나날이었다. 조부께서는 아들 형제 딸 다섯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아들마저 끌려갈 것을 염려하여 리장에게 매달렸는데 그는 자신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 제외해 주겠다 하여 그 약속을 믿고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머슴살이를 했음에도 18살 되던 해인 1943년에 징용으로 끌려가 지금의 규슈지역의 한 탄광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8.15해방으로 두 형제분은 귀국했는데 백부는 5년.
부친은 2년의 징용생활이었다. 백부께선 이미 깊은 냉방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젓먹이 막내를 포함한 6남매를 남겨두고 47이란 젊은 나이에 가슴에 한을 안은 채 세상을 뜨셨다. 태평양전쟁당시 우리 젊은이들의 희생은 30만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라 한다.
아직도 일본땅 곳곳에 아무렇게나 집단매장된 유골들이 흩어저 있으나 역대 정부에서는 유골을 수습해 국내에 안치하는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일부사찰(천불사등)에서 100여구씩의 유골을 수습해 제를 올리는 예도 있어 안타깝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임진왜란. 식민통치등을 통해 우리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일삼아 왔다.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정신대할머니들에 대한 반인륜적 악행을 일삼고도 이와 관련하여 일절 사과나 보상이 없다.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등에서 1945.1.
27까지 저질러진 유대인대학살(호로코스트)로 유대인 약600만명과 공산주의자. 동성애자.장애인등 비유대인 300만명이상이 가스실에서 살해돼 불태워졌다.
종전 후 독일은 유대인 학살책임을 인정하고 수백억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한바 있으며 학생들에게 두 번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교육을 통해 교훈으로 삼고 있음은 일본의 행동과 너무도 대비된다 할 것이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총리의 공식사과와 법적배상등 6가지 조항등을 요구하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시위는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국제적으로 유일한 최장수집회로 기록되고 있다. 정대협의 이러한 끈질긴 노력과 국제적연대활동이 빛을 보게된 것은 2000년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일본정부의 유죄인정과 법적책임이행판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이 판결이 국제법상 강제할 방법은 없다 해도 그 선언적 의미는 매우 큰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대지진등과 관련하여 모든 언론매체를 통해 일본인돕기를 통해 1천억원의 성금이 모아저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30일 발표된 일본 중학교과서에 독도를 한국에서 불법점유하고 있다는등 더욱 노골적으로 학생들에게 왜곡된 교육시키고자 하는 저의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의 조어도를, 러시아와 북방 4개섬을 두고 분쟁중에 힘의 논리에 의해 일본이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어 받은 상처와 자존심을 독도를 통해 자국민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인류애적 차원에서 일본을 돕자는 부분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호의를 보이면 그들이 달라질 것이란 착각은 않했으면 한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국민성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독도문제 불거질 때 마다 흥분하기 보다는 우리가 힘을 기르는 일이다. 독도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한정권이 무너졌을 때 중국이 접수하고 북한영토가 자기네 영토임을 주장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제정세 판단과 예견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정몽준의원이 주장하는 우리가 핵을 갖는 문제와 미사일주권을 찾는 전략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