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군농업기술센터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지 어느새 2년이 넘었다. 1975년 서산농촌지도소에서 시작해 당진군농업기술센터를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물론 퇴임한 후에도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옛 사진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돌아볼 때는 그 당시로 돌아간 것만 같다.

첫 번째 사진은 1972년 월남(베트남)전 파병부대인 백마부대원으로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백마부대 28연대 소속인 나는 8개월간 월남에서 복무했다. 나를 고국으로 돌려보내준 것도 베트남이었다. 총상을 입고 반년 가량의 치료 끝에 3년의 복무기간 중 1개월여를 남기고 의가사제대를 했다. 주변인들은 잘 모르지만 당시 총상 뿐만 아니라 폭탄의 파편도 온몸에 남는 등 내 몸은 만신창이었다. 당시의 일로 인해 나는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다. 사진 속의 두 아이들은 부대가 주둔했던 인근의 원주민 아이들이다.

두 번째 사진은 1981년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 당진읍지소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오른쪽이 당시 지소장이었던 고광균씨, 그 옆이 지영복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이다. 당시 지영복씨가 당진4-H클럽 당진읍 회장이었다. 그 옆에 박효자 여성부회장. 박효자 부회장의 남편이 당진읍지소에 근무했던 홍종렬씨다. 그 옆에 설악철물 성광용씨다. 4-H클럽이 청소년돕기 일일주점을 해서 만든 수익금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세 번째 사진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내(이숙영)와 두 딸(지원, 지혜)과 함께 찍은 것을 보니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던 것 같다. 큰 딸은 지금 결혼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과장으로 일하고 둘째딸은 대호지면사무소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마지막 사진은 내가 퇴직할 무렵에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 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구성한 ‘한복회’ 모임의 모습이다. 당시 학과 뿐만 아니라 한서대학교 전체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한복회는 당진, 예산, 홍성, 서산 등의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데 아직도 이 모임의 회장을 내가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