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개입하면 안되는 일이 없고, 학연이나 연줄이 없으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는 나라. 여야 정당은 낙하산 인사와 지역구 챙기기로 국가재정을 좀먹는 나라.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야하고, 세무관리에게 뇌물을 주면 세금이 줄어드는 나라. 고용이 보장된 공기업의 노조는 파업을 일삼고, 프로 축구선수들은 승부조작을 하는 나라. 그럼에도 부정부패로 처벌받는 사람은 극소수인 나라.
거리에서는 국민들의 과격 시위가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으쓱대는 나라. 어느 나라일까? 대한민국? 아니다. 그리스이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하는 국가부채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나라이다.
지난주 그리스 의회는 세금을 크게 인상하고, 사회복지를 대폭 축소하고, 국유재산을 매각하는 법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유럽연합과 IMF로부터 1200억 유로에 달하는 차관을 받기 위해서였다. 아테네 의사당 밖에서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차관을 받지 못하면 국가재정은 파탄이 나고 국가경제는 마비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서구식 민주주의 발원지이고, 오랜 역사유적과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을 갖고 있는 관광국가이며, 200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그리스. 그런 나라가 졸지에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전락했다. 그 원인은 그리스 국가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라는 것이 영국의 시사주간지와 미국 등 서방 언론의 공통적인 진단이다. 부정부패 감시단체인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그리스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 국가 중 가장 부패지수가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는 부정부패가 심한 국가일까? 그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신문이 무기력하다는 점도 그 중 하나일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신문협회 2009년도 연감에 의하면 그리스의 신문구독율은 불과 11.7%로,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이는 부정부패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언론의 기능이 그리스에서는 발휘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다양한 언론매체 중 신문은 부정부패의 감시와 고발 기능이 가장 탁월하다. TV의 경우, 화면이 없는 뉴스는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장 화면이 없다면, 뉴스로 채택되거나 비중있게 다뤄지기 힘들다. 따라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권력층의 비리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패의 사슬을 TV가 파헤치기는 쉽지 않다.
인터넷도 부패감시와 고발에는 한계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비리를 폭로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며 비리를 폭로하기란 쉽지 않다. 부패폭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보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파워블로거 사례에서 나타나듯, 인터넷이 오히려 부패의 고리로 악용되는 경향을 보이고도 있다.
따라서 은밀하고 복잡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파헤칠 수 있는 최적의 언론 매체는 공신력을 갖춘 신문이다. 제보자의 익명을 보장해주면서, 부패의 고리를 파헤쳐낼 수 있고, 기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과 그리스 모두 그러한 신문의 부패감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지역신문이 부실한 상태라, 지역단위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거의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다. 최근의 저축은행 비리나,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지역단체장과 지역의원의 비리연루 뉴스가 그러한 점을 입증한다. 대한민국이 그리스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문의 부패감시 기능, 특히 지역신문의 부정부패 감시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조속히 강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