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이다. 예부터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추석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일로 보름의 만월처럼 곡식이 여무는 풍성한 가을을 상징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석맞이 준비로 분주한 이때, 상대적으로 더 쓸쓸한 이웃들이 있다. 함께할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 차례상 차릴 생활비가 넉넉지 않은 기초생활수급 가정, 명절음식을 함께 할 부모가 없는 소년소녀가장들이 그들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급변하면서 당진에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인구가 5500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한달 40만원 남짓한 생활비로는 차례상 차리기가 쉽지 않은 기초생활수급 가정과 소외계층까지.
추석을 앞두고 불편한 몸으로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박정희(가명) 씨와 이혼한 아들 대신 10년째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는 김설희(가명) 할머니를 만나봤다. 자연이 인간에게 제 것을 나눠 곡식이 여물 듯, 추석을 맞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조금씩이라도 함께 나눈다면 더 풍성한 추석이 되지 않을까. 본지에서는 ‘사랑을 나눠주세요’ 코너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역주민들의 따뜻한 손길을 이어주고 있다. 사연 제보 및 후원은 당진시대 355-5440(담당 우현선 기자)로 문의하면 된다.
[손자, 손녀 돌보는 김설희(가명) 할머니 ] 아들 내외 이혼으로 남겨진 아이들
정신과 치료 받는 손자와 사춘기 손녀
김설희(가명) 할머니는 신문에 사연이 나게 되면 한창 사춘기인 손주들의 마음이 다칠까봐 걱정이다. 엄마, 아빠가 곁에서 마음껏 안아주고 돌봐주지 못해 또래들보다 마음이 여린 손주들이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지만 할머니는 홀로 아이들을 돌보기가 버겁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래도 괜찮았어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라 아이들도 잘 돌봐주셨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생활비 마련이 어려워졌어요. 내가 이렇게 다리가 아파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힘드니 말예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우울증까지 와서 뒤따라 갈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래도 할머니는 두 손주를 생각해 힘을 냈다고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도 할머니를 무척 위한단다.
"첫째는 10년을 키우면서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착해요. 근데 요즘은 사춘기인지 부쩍 짜증이 늘었어요. 걱정이죠. 그래도 할머니 생각은 끔찍이 해요. 오늘도 학교 가기 전에 커피를 다 타가지고 주고 가더라니까요."
종양 발견된 지 1년째, 정밀검사도 못받아
할머니 걱정은 둘째 손자다. 얼마 전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뒤부터 약물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읍내 학교를 다니는 손자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속상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아이들의 부모는 손녀가 4살 때 이혼했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도 소식이 뜸하다. 아이들을 위한 생활비도 전혀 보태주지 않는 상황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할머니와 아이들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생활비에 기댈 수밖에 없다. 월 40만원 나오는 돈으로 집세 내고 쌀 한 포대를 사고 나면 아이들 옷가지나 고기반찬 한 번 사주는 것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1년 전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갔다가 대장에 종양이 발견됐다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할머니는 큰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 아니 못가셨다. 역시 돈이 문제다.
이번 추석에 할머니는 손주들과 할아버지 차례를 지낼 것이다. 손녀는 한두 가지라도 차례 음식을 만들면 안되냐고 하지만 할머니는 추석날이 가까워 질수록 걱정이다. 아이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이지 못하는 것이 할머니는 가장 마음이 아프다.
[불편한 몸으로 홀로 사는 박정희 씨] 장애로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어
정부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돼 생계 막막
박정희(가명, 63) 씨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없으면 집 앞마당에서도 한 발짝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낮은 의자를 두 손으로 잡고 지팡이 삼아 걸어야 하는 박 씨는 종일 먼 산을 내다보고, 집안을 조금씩 돌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간혹 수술한 다리가 아파 밤잠을 설친 다음날에는 병원에 가기도 하지만 그것도 큰맘을 먹어야 가능하다. 집 밖 몇 백 미터 앞에 세워 둔 사륜오토바이가 있는 곳까지 가는 시간만 해도 30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박 씨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은 뒤로 장애를 얻게 되었다. 몸은 조금 불편했지만 생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왜 불행은 겹쳐서 오는 걸까. 23년 전 남편이 간암으로 먼저 세상을 뜬 뒤 공장에 나가 번 돈으로 홀로 두 아들을 키운 박 씨의 다리가 4년 전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무릎에 고인 피와 물을 빼냈는데도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견디다 못해 수술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 후로는 혼자 서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다니던 공장도 부도가 났고 다리도 성치 않아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돼 생활이 막막하게 됐다. 제외된 이유는 장성한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있으면 뭐 하나요. 큰 아들은 캐나다로 요리를 배우러 갔어요. 1년을 계약하고 갔으니 갔다 온 다음에야 제대로 월급을 받을 텐데... 1년만 기다렸다 아들이 돌아온 뒤에 수급비가 끊겼다면 좀 나았을 텐데 말예요.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은 몸이 아파서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에요. 오래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일용직 근로를 하는데 제 한 몸 돌보며 살기도 어렵죠.”
추석은 다가오는데 박 씨는 한숨만 나온다. 올 추석은 둘째 아들과 단둘이 보내야 한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다고 해도 먼저 간 남편 차례상은 차려야 할 텐데 물가는 오르고 생활비라고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애인연금 십여 만원이 전부이니.
“애들 아빠 차례는 지내야 하지 않겠어요. 작년까지는 아끼고 아껴서 3개씩 샀었는데 올해는 하나씩도 제대로 못 살 것 같아요. 사과, 배 하나씩 사고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려야죠.”
아무도 오지 않는 대문 밖을 한참동안 내다보고 있는 박 씨의 어깨너머로 누렇게 익은 벼가 넘실대는 들판이 보인다. 박 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