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문국가산업단지 주거단지 예정지에서 대규모 청동기시대 집단생활유적과 수도가 한성이었던 백제시대의 유적이 동시에 발굴돼 역사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당진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대면 성산리 일대 석문국가산업단지 주거단지 예정지에서 발굴된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 320여 점과 유구 170여 기를 비롯해 90여 기의 집단 주거지가 발견됐다.
또한 석검과 석도, 석촉, 석부 등 다양한 석기 유물과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비롯해 석기제작 시 사용되었던 모릇돌과 석기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다수의 유물이 함께 발굴됐다.
군 관계자는 “이러한 자료들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식생활과 생산 활동에 관련된 것으로 고대면 성산리 유적의 청동기시대 집단 생활유적에서 주목해야할 고고학적 성과들이다”라며 “동일 구릉지대에 시대를 달리해 조성된 백제 한성기의 유적은 군사 방어시설인 산성과 성곽 내·외부에 조성된 집단 생활유적과 무덤군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했다.
산성은 산 정상부를 안쪽에 두고 외곽을 흙과 돌을 사용하여 둥글게 돌린 형태로 둘레는 약 316m, 내부 면적은 4,483㎡ 정도이다. 동시에 산성 안쪽 평지에서는 동시기대의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남쪽 성벽 외부의 구릉 사면부 일대에서는 주거지 40여 기가 군집되어 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점토와 돌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부뚜막이 확인되었다. 유적지에서는 시루, 동이, 굽다리접시, 네 개의 다리가 달린접시, 뚜껑 및 꺾쇠, 쇠도끼, 쇠낫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소규모의 고분군도 확인되었다. 당진 성산리 백제시대의 유적은 군사(산성)·생활(집터)·분묘(고분) 유적을 모두 갖춘 복합유적에 해당하며, 당시 마을의 범위는 성산리 일대를 모두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 해당된다.
성산리 산성은 판축기법으로 쌓은 한성백제기의 성으로 삼족토기와 사족토기가 출토되어 한성백제기 당진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산리 유적에서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유적도 다수 발굴돼 이곳에서 선사시대부터 집단적인 생활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당진지역에서 이러한 큰 집단생활 유적이 확인된 것은 그동안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당진의 지역사,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한성 백제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성과”라며 “당진의 선사시대 및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은 당진의 선사시대를 규명하고 백제 한성기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해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지역박물관 건립 시 중요한 전시적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