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국으로 분류되었던 한국이 7~80년대 20여 년간의 고도성장 경제부흥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우리 고장 당진은 그 당시에도 그냥 전형적인 시골이란 이미지 밖에 없는 농촌지역이었다. 산업이라곤 소규모 어업과 쌀농사를 비롯한 콩, 보리, 김장채소 재배가 거의 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다 좀 보탠다고 하면 천일염이 생산되는 정도였다.
눈부시게 발전하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경인지역과 영남의 공업단지들을 보면서 90년대 중반까지도 오죽하면 그곳들의 연기나는 공장굴뚝들을 부러워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을까.
당진에 발령받은 공직자들이 오지좌천 서러움에 울면서 들어왔다가 떠날 때는 시골인심에 또 울었다는 일화도 아주 맹한 얘기는 아니었을 법하다.
그런데 그렇게 후미졌던 당진군이 새해부터 당진시가 된다. 군단위 행정구역이 시로 승격이 되는 경우가 아주 드문 현상은 아니지만 수도권이나 큰 도시 옆에서 덤탱이로 되는 것과 인근 큰 도시의 빨대현상으로 내줄 것 다 주면서 가까스로 승격되는 경우와는 감회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과정에서 숱한 사연도 많고 아픈 부분이 있었을지라도 이제 당진은 충남의 중추도시이고 쉽게 얕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충남에는 도청 신도시, 세종특별시를 포함하여 10여개의 시단위 행정구역이 있고 아직은 서산시와 비슷한 세력 위치에 있지만 어딜 가도 당진은 세번째라는 숫자를 달아 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구, 예산, 소득, 산업구조 등에서 제법 도시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이렇게해서 우리는 정치적 통념상 시민을 넘어 시 행정구역의 명실상부한 시민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군민이 시민되었다고 외견상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마음가짐이나 생활자세를 한번쯤 뒤돌아 볼만은 하다.
왜냐하면 시승격 자체가 발전이듯이 개개인도 어느 계기를 통하여 획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마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해당지역 사회적으로도 공동체의식을 비롯한 정서의 향상은 평화로운 사회분위기 조성에 큰 몫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실제보다 더 비관적이고 더 악의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비춰질 때가 많다. 공직자 부패부조리, 막장의 상혼과 도덕불감증, 우울증 환자의 급증, 분노지수 팽배, 어른 없는 사회, 환경파괴, 공짜심리 만연, 내 탓 없이 무조건 네 탓, 지적 불구자들의 생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암울한 내용들이다.
현실적으로 살아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리들은 자나 깨나 이러한 소음 속에 갇혀 있다. 사실 곪아 터질대로 터진 큰 문제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너무 확대포장, 침소봉대하려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것들은 결국 내 잘못을 감추고 내 이익을 지키려는 음모에서 속임과 엄포의 절묘한 작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손자병법과 삼국지를 통독한 사람들이 꽤 많은 세상이다.
우리 시민이란 듣기 좋은 말을 떠나 나 자신을 올바로 돌보기 위해서는 뚜렷한 주관과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허상과 실상을 구별할 줄 알고 내 자식에게 교육시킨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언제나 살만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일정비율의 상, 중, 하가 존재한다. 「상」의 현상만 보지도 말고 「하」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 자기의 못남과 게으름을 큰 소리로 커버하려는 것도 알고, 작은 것을 던져놓고 큰 것을 취하려는 속셈도 읽어야 한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땀 흘린대로만 살아가려는 사람이 많으면 세상은 비교적 평온해 진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꼭 필요한 궂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늘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과 언제나 사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나를 지키는 첩경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