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하 FTA) 협상 타결 후 4년 4개월만인 지난해 11월 22일, 수많은 농민들의 반대와 우려 속에 끝내 여당의 단독처리로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 5당, 시민단체, 시민 1만여 명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미 FTA 비준 무효· 비준안 철폐·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고 국내 곳곳에서 농민을 포함한 시민들의 촛불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FTA 체결로 인해 농업 부문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진에서는 이미 세 달 전부터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당진의 농민들은 구체적인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들이닥친 ‘한미 FTA 발효’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미 FTA가 당진농업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야별로 분석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연재기사를 8회에 걸쳐 보도한다.

낙농품은 거의가 2차 가공된 상태로 수입된다. 분유, 연유, 유당, 치즈, 버터 등의 유제품은 적게는 40% 내외부터 많게는 176%에 이르는 높은 관세를 적용해 국내 관련 산업을 보호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미 FTA 통과로 탈지·전지분유를 제외한 대부분의 품목의 관세가 15년 내에 철폐돼 수입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6월 통계 기준으로 당진에는 154농가가 낙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1만915두가 사육되고 있다. 농가당 평균 70여 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과거 평균적으로 20~30마리를 키웠던 것에 비하면 사육 농가 수가 줄어든 대신 농가당 사육 두수가 크게 증가해 규모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 마진폭이 줄어든 만큼 규모를 늘려 적정 수익을 유지한 셈이다.

사료값 인상으로 생산원가 큰 폭으로 증가

지역의 농가들은 최근 가장 큰 어려움으로 사료값 인상을 꼽았다. 국내 곡물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타 축종과 마찬가지로 낙농가 역시 대부분의 사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김인상(순성 봉소리) 씨는 “국제 곡물 생산량 변화와 환율 등 외적인 요인에 의한 사료 가격이 요동치면서 농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황송아지는 농가들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우유를 짜지 못하는 숫젖소는 통상적으로 고기를 먹기 위해 키운다. 하지만 곡물 가격이 높아지면서 소를 애써 키워봤자 고기값이 사료값보다 적게 나와 손해를 봐야하는 꼴이다. 최근에는 한우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젖소와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어 숫젖소에 대한 수요가 더욱 줄어든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황송아지는 찬밥 신세다. 이수호 지회장은 “파는 사람이 운송료까지 지불한다고 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예전에 농가 소득의 일익을 담당했던 황송아지가 이제는 실질적으로 공짜인 셈”이라고 말했다. 숫소는 키울수록 손해가 커져 농가들은 출산을 앞둔 소가 암소를 낳기를 기도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사료 생산이 돌파구?

사료값 인상에 따른 농가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급 조사료를 재배하고 자가 TMR을 통해 직접 사료를 만들어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과 조합에서 생산하는 사료를 쓰고 사료 재배를 하지 않아 남는 시간을 소를 관리하는데 더 투자하는 방법이다. 조사료를 생산하면 사료값 부담을 줄여 수익을 높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농장 관리에 신경 써 깨끗한 환경에서 적정 두수를 사육하면 질병을 예방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석문간척지에서 일부 조사료를 재배하고 있느나 당초 벼농사를 위해 조성된 만큼 물빠짐 시설 등 조사료 재배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겨울철 추운 날씨로 인해 작물 재배가 쉽지 않다. 여기에 먹이를 찾지 못한 철새들이 날아들어 그나마 자란 작물마저 뿌리 채 뽑아먹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당진낙농축산업협동조합(이하 당진낙협)에서 재배하는 조사료를 이용할 경우 작물 재배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지만 자가 생산보다 단가가 높은 만큼 마진폭이 줄어들어 농가에 소득이 적다. 당진낙협에서는 당진축협과 함께 조사료 재배지 400ha를 확보하고 조사료 생산을 통해 환율, 곡물 가격 등 외부적 영향이 적은 국내산 사료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정부 대책에 ‘불만’

한미FTA가 통과된 후 정부는 농업에 23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23조원은 엄청난 금액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농가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갈 지 뚜렷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수립한 대책에는 기존에 지원돼 왔던 정책적 예산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조석형(합덕 운산리) 씨는 “시설 현대화 자금을 지원 받아 농장을 정비해 애써 소를 키워도 대출금 갚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며 “학교 급식 중 우유 보급률 50% 수준에 그치는 만큼 수요를 늘리고 사료값을 지원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며 한미FTA 대응책에 불만을 나타냈다. 한미FTA 비준과 관련해 농가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료값 지원, 농가 부채 탕감 등의 대책보다는 시설비용 융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경용 당진낙협 조합장은 “정부 정책은 시설투자비 지원에 그치지만 인·허가를 받지 못한 축사와 축산업을 제한하는 조례로 실효성이 적다”며 “구제역으로 인해 조례를 강화했다고 하는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축산업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부가가치 높은 2차 가공식품 만들어야”

한국의 우유시장 규모는 320만톤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 원유 생산량이 200만톤 정도이고 탈지분유, 치즈 등 유제품 수입량이 120만톤 정도다. 국내 생산량 중 170만톤 정도는 우유로 판매되고 나머지 30만톤가량이 2차 가공을 거쳐 관련 유제품으로 만들어진다.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식품은 외국산에 시장을 내어주고 국내 생산량은 단순 우유 판매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2차 가공식품은 부가가치가 높은 반면 시설투자, 인건비 등으로 투자비가 많이 든다. 자본력이 부족한 일반 농가나 조합에서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2차 가공 유제품 생산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힘겹게 소를 키우고 아침 저녁으로 우유를 짜느라 장거리 여행도 편히 다녀오지 못한 농가들은 높아진 사료값으로 소득은 줄어든 반면 생산된 원유를 이용해 가공하여 판매하는 대자본은 상대적으로 더 큰 수익을 누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미 FTA가 통과되고 관세가 철페되면 가공된 유제품 수입 물량이 늘어 이러한 구조가 더욱 고착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인상 씨는 “지금까지 가공품 분야는 외국에 시장을 거의 다 내어준 상태였다”며 “한미FTA 통과로 인해 그나마 국내 원유가 시장을 장악했던 우유시장까지 내어줘 축산업이 없어질 판”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