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하 FTA) 협상 타결 후 4년 4개월만인 지난해 11월 22일, 수많은 농민들의 반대와 우려 속에 끝내 여당의 단독처리로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 5당, 시민단체, 시민 1만여 명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미 FTA 비준 무효· 비준안 철폐·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고 국내 곳곳에서 농민을 포함한 시민들의 촛불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FTA 체결로 인해 농업 부문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진에서는 이미 세 달 전부터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당진의 농민들은 구체적인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들이닥친 ‘한미 FTA 발효’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미 FTA가 당진농업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야별로 분석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연재기사를 8회에 걸쳐 보도한다.

한미FTA 통과로 예상되는 과수 농가의 피해 또한 적지 않다. 현재 미국에서 수입되는 과일에는 최소 45%에서 최대 144%에 이르는 관세가 매겨진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20년 안에 모든 관세가 철폐되며 일부는 협정 발효 즉시 관세가 없어진다.

현상익 당진사과연구회장 “국내 농가의 평균 재배면적이 0.7ha인데 반해 미국은 50~70ha에 이르는데 이는 농가당 100배에 이르는 규모 차이”라며 “이는 곧 엄청난 물량의 농산물이 우리 시장으로 들어온다는 의미”라고 우려했다. 규모가 커지면 재배면적당 생산비가 낮아져 공급 가격이 내려간다. 반면 많은 양의 생산물을 꼼꼼히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품질은 소규모 농가가 앞서기 마련이다. 우리 농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보다는 품질에 더욱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당진은 사과와 배, 포도 등이 주로 생산된다. 사과는 410ha, 배는 160ha, 포도는 40ha 정도의 규모다. 당진 과수 농가는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품질은 전국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지난해에는 해나루사과가 탑프루트 평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일 소비량이 정체된 상황에서 미국의 다양한 과일이 들어올 경우 상대적으로 국내의 과일 판매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존의 과일들도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며 저가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서히 줄어드는 관세만큼 조금씩 시장을 내어준다면 과수 농가들은 설자리를 잃게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농민들은 더욱 큰 문제로 농업 피해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상황 추산이 안돼 향후 대책 마련도 힘든 실정”이라며 답답한 상황임을 인정했다. 농민들은 직접 피해를 추산하기 힘든 만큼 전문가의 연구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교육해 농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과 - 관세 없어지면 국내산 절반 가격

사과는 당진의 과수 농가를 대표하는 품목이다. 재배면적도 가장 넓을 뿐 아니라 품질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한미FTA로 인해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이기도 하다. 가장 널리 재배되는 후지 품종의 경우 가장 긴 기간인 20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다. 특히 사과는 과일류 중 유일하게 세이프가드를 인정하고 있다. 세이프가드란 국내 관련 산업의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일시적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다. 미국이 수입 제한을 인정하다는 것은 국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칠레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사과 강국이다. 미국산 사과의 경우 맛과 겉모양, 식감 등이 국내산에 비해 뒤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관세가 철폐될 경우 가격이 국내산의 50~60%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돼 저렴한 가격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시장을 내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어 농가들은 답답한 실정이다. 현상익 회장은 “FTA 대책으로 나온 정책들을 살펴보면 밭 직불금 제도, 농약·비료 영세율 연장, 농가 면세유 지원 등 기존의 정책과 별반 다를 바 없다”며 “세부적인 피해 규모를 연구하고 예방대책, 피해대책, 극복대책 등을 마련해 농가에게 교육·지원하는 실질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현재의 형식적인 FTA 대책을 꼬집었다.

배 - 과일 수입 증가로 간접피해 우려

배는 다른 과일에 비해 직접적인 피해가 적은 품목이다. 미국은 중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배 생산량이 많은 국가이지만 주 재배 품종이 서양배이다. 미국 전체 생산량 중 동양배 비율은 6%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동양배 가격이 국내산과 큰 차이가 없어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20년에 걸쳐 관세가 모두 철폐되면 국내산에 비해 20%가량 가격이 저렴해져 장기적으로 미국산이 저가품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있다. 또한 미국 농가에서 동양배로 품종을 전환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최성락 당진배연구회장은 “아직 피해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지만 과일류 수입이 증가하면 배 수요가 감소할 우려가 있다”며 “자동차, 전자 등 제조업 수익이 증가하는 만큼 피해를 보는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업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포도 - 계절관세로 비출하기 5년 후 무관세

포도는 성출하기와 비출하기를 나누어 관세에 차별을 뒀다. 국내 생산품이 본격 출하되는 5월부터 10월15일까지는 현행 45%의 관세가 17년에 걸쳐 철폐된다. 반면 출하가 적은 10월16일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최초 관세 24%에서 시작해 5년만에 관세가 모두 줄어든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사계절 내내 포도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계절에 따른 과일 수요 차이가 사라져 타 과일 수요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즉, 평소 포도를 먹지 않는 계절에도 포도를 쉽게 접할 수 있어 다른 과일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당진의 포도 농가는 또 다른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당진의 대표적인 포도 생산지인 순성과 합덕 일대 가화포도 생산단지가 테크노폴리스 개발 사업지구로 묶여 버린 것이다. 개발이 진행될 예정인 토지에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논리로 농가 보조사업이 모두 끊겼고 시설투자마저 불가능한 상태다. 박상일 당진포도연구회장은 “한미FTA에 대비해 농가 경쟁력을 높여도 모자랄 판에 투자 자체가 막혀 시설보강, 품종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산업단지 개발도 더뎌 대책을 세우기 힘든 실정”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농가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한미FTA는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농업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통해 농가들이 처한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