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골과 쥐눈
행정구역상 송산면 금암2리 주민들은 ‘금암2리’보다 ‘칠절리’로 불리길 원했다. 칠절리는 옛날에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이라 불리었다. 지금도 주민들은 마을회관이 자리한 2반을 감나무골이라 부른다.
칠절리라는 마을명도 감나무와 관련이 있다. 감나무는 일곱가지 절(絶)이 있다고 한다.
첫째, 나무가 오래 살고 둘째, 그늘이 많고 셋째, 새의 집이 없고 넷째, 벌레가 먹지 않고 다섯째, 서리 맞은 감잎이 보기 좋고 여섯째, 아름다운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일곱째, 떨어진 잎이 커서 붓글씨 쓰기에 좋다는 것이다.
원당동에서 보덕포로 이어지는 금암로를 따라가다 칠절리 마을표지석을 보고 들어오는 마을입구가 1반인데 주민들은 ‘쥐눈’이라 부른다. ‘쥐눈’은 마을 지형이 쥐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명당이 있다고 한다.
칠절리에는 집성촌을 이룰 만큼 집단 거주하는 성씨는 없으며 현재 40가구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없으며 노인회원이 전 주민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막동골 넘어 당진장 가던 시절
지금은 금암로로 시내버스가 자주 다니고 집마다 차가 있어 당진시내를 쉽게 오가지만 옛날에는 사정이 달랐다.
“나 어릴적에는 모두 막동골을 넘어다녔지. 당진장까지 여기서 한 8km가량 떨어져 있을라나. 장에 한 번 가려면 모두 걸어가야 하니 곧장 질러간다고 산을 넘어 다녔어.”
마을회관에서 바로 보이는 막동골은 지금도 주민들이 이용하는 샛길이다.
막동골 말고도 매봉산과 함께 당산리로 넘어가는 팽나무제도 칠절리의 대표적인 산들이다.
팽내무제는 마을 학생들이 송산초등학교에 다닐 때 넘나들던 길목이었다고.
칠절리 주민들 대부분은 논농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다. 밭농사는 가족들이 먹고 남는 것을 장에 내다파는 정도로 소규모다. 지금은 마을 입구에 푸른 잔디밭마냥 너른 논이 조성되어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전후 즈음까지는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 시절에 일본인이 제방공사를 해서 바다를 막았지. 제방공사를 한 건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일본인은 기억이 나~ 혹부리라고 불렀지. 턱 아래 붙은 큰 혹이 배 아래까지 닿았어~.”
“맞아, 맞아. 혹부리는 나도 기억이 나는구먼. 혹부리가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은 농사를 짓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조금씩 쌀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
제방공사를 하기 전까지 마을회관과 느티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넘나들었다. 당시에는 칠절리에 농사처도 많지 않아 대부분 주민들이 인근 마을에서 품을 팔아 살거나 바닷가에서 게를 잡는 일이 주된 생계였다고 한다.
칠절리의 상징 ‘느티나무’
칠절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는 칠절리의 상징이자 주민들의 자랑거리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300여 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주민들은 500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늘도 하나 없는 논 가운데에서 일을 하다가도 느티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고 새참도 먹었어. 낮잠을 자기도 하고. 어릴 적에는 느티나무에 메달리고 올라가고 놀이터였지. 희한한 일은 느티나무 아래 사람들이 있으면 작은 나뭇가지 하나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말이여. 느티나무는 칠절리의 상징이여.”
옛날에 칠절리는 갯마을이라 바닷물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살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 나무를 심으면 주민들이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해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경로당을 가다’가 농번기로 넘어오면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70, 80대 어르신들도 평생 업으로 삼았던 농사에서 손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촌에 젊은이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논과 밭을 둘러보고 햇볕이 강렬해지는 한 낮에는 경로당에 모여 한 숨을 돌리고 농사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