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경로당이 ‘성수기’를 맞았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윷도 놀고, 장기도 둔다. 끼니 때가 되면 밥 당번을 정해 시래기된장국에 점심도 함께한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송산면사무소가 소재한 상거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선평리와 하거리, 부곡리의 일부가 합쳐서 생긴 마을이다. 오래 전부터 면소재지였던 상거리에는 한때 오일장이 설 정도로 번성을 이뤘다. 최근에는 바닷가 근처로 산업단지가 들어오면서 유곡리와 서정리 부근의 개발이 활발해 상거리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면소재지로 농협, 우체국, 파출소 등이 한데 모여 있어 송산면의 공식적인 중심 마을임은 틀림없다.
상거리는 가학리와 삼월리로 길게 뻗은 지형을 하고 있다. 5개반으로 이뤄진 상거리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마을마다 붙은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면사무소와 시장 상가들이 들어서 있는 1·2반은 지형이 ‘게’ 형태를 닮았다 하여 금 또는 겜이라 불리우던 것이 요즘에는 거미, 긔미로 불리고 있다. 거미라 불리는 이곳은 상거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뒷산에 해복형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3반은 돌 속에서 물이 잘 나오는 대동샘이 있다고 하여 이름 붙은 석수골과 온양골, 고붕골, 석석골로 불리는 골짜기가 모여 있다.
4반은 토굴, 대골, 북어실이라고 불리는데 특히 대골과 매암들 사이에 있는 토골은 이름있는 부자가 나올 수 있는 넓은 터가 자리한 명당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5반은 매암골, 홍천골, 번개말이라 불린다. 이밖에도 부곡리와 경계에 이르고 있는 거북산 아랫마을 논 가운데 작은 왕묘같은 것이 있는데 주민들은 그것을 거북알이라 부르고 있다.
상거리에서도 1, 2, 3반에는 전주 이씨가 4, 5반에는 남양 홍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특히 이씨가 하도 많아 인근 주민들은 상거리의 자연 부락 이름을 따서 ‘긔미 이씨’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양조장과 대동샘, 송산 5일장
지금은 주요 관공서와 상가, 은행들이 들어서 있는 상거리지만 20여 년 전만해도 5일장이 섰다.
“버스가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장이 사라졌지 아마. 양조장도 있고 송산면민들은 당진까지 나가지 않고 대개들 송산장에서 장을 봤었지. 옛날부터 오랫동안 성황을 이룬 장은 아니었지만 제법 오랫동안 장이 열렸었어.”
“송산 양조장하면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송산 막걸리는 당진에서도 최고로 꼽혔어. 일제강점기부터 만들었던 막걸리였으니까.”
양조장은 사라지고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상거리에는 여전히 시장을 이뤘던 장옥들의 형태가 곳곳에 남아 있다.
물이 귀했던 시절에도 마을의 대동샘에서 만큼은 물이 끊이지 않고 솟았다. 지금은 상수도가 보급돼 지하수 사용이 적지만 2반에 위치한 대동샘에서는 여전히 물이 솟아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대동샘에서 손빨래를 하거나 주변 농사처에 물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다.
함박산 중턱에 있던 일제시대 신사
상거리에는 함박산과 팔아산이라는 큰 산이 두 개 있다. 가학리까지 연결된 팔아산과 더불어 마을의 큰산으로 불리는 함박산에는 일제시대에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함박산 중턱에 신사가 있었지. 일제시대에는 각 면과 학교마다 신사를 차려 놓고 참배를 하게 했었잖아. 송산면에는 면소재지인 상거리에 그 신사가 있었어. 주민들이 거의 날마다 신사에 올라 참배를 했었지.”
경로당에 모인 어르신들은 신사 참배를 했던 당시 절을 올리는 방법까지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주민들이 모두 산에 올라가 신사에 불을 질러 없애 버렸지. 그래서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경로당에 모인 어르신들은 일제시대에 송산초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일본말로 시험을 치러야 했다는 기억도 꺼내 놓았다.
“그때 당시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려면 일본말로 시험을 치러야 했어. 통 안에 연필이며 각종 물건을 넣어 놓고 뚜껑을 열고 잠깐 보여주고 나서는 통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일본어로 말해보라고 했었지.”
고 박만종 옹과 상거리 경로당
상거리에 사는 어르신들은 경로당에 모여 담소도 나누고 점심도 함께한다. 몇 해 전에는 경로당 활성화 사업으로 상까지 받았다. 상거리 경로당 왼편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초대 상거리 노인회장을 맡았고 송산면 노인회장을 지낸 고 박만종 옹의 기념비다.
김용구 노인회장은 “돌아가신 박만종 어른이 경로당 대지를 희사해서 지금까지 노인들이 모여 담소도 나누고 주민들이 마을 일을 논의할 수도 있는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