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경로당이 ‘성수기’를 맞았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윷도 놀고, 장기도 둔다. 끼니 때가 되면 밥 당번을 정해 시래기된장국에 점심도 함께한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은행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 행정동

은행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행정동은 행정1, 2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당진 시내에서 신성대학 방면으로 왼쪽 마을이 1통, 오른쪽 마을이 2통이다. 1통은 3개반으로 나뉘는데 총 6개 골짜기 사이사이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6개 골짜기마다 붙은 이름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산골, 사기장골, 옥현, 불당골, 용못골, 개젖이(개젓티)가 그것이다. 행정1통 1반은 이산골이라 하는데 옛날에 산에 돌배가 많아 붙은 이름이란다. 이산골, 사기장곡이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 차진 흙이 많이 나 사기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2반은 옥현이라 불리는데 당진 사람들에게 친숙한 옥돌고개가 바로 이곳이다. 옛날에 옥돌이 많이 나와 붙은 이름이라 한다. 예부터 유리 광택이 나는 퍼렇고 투명한 청옥이 많이 나왔는데 실제 옛 문헌에도 이러한 사실이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

행정동의 지명이 유래된 은행나무는 태성산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광복 전후에 베어져 지금은 행수정터만 남아 있다.

“우리 어릴 적에는 은행나무가 살아 있었지. 어른 팔로 8아름이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였어. 그런데 산 임자가 은행나무를 베어 팔아먹었지. 그때 얼마나 야단들이었다고. 큰 나무를 베었으니 마을이 망할 거라는 말까지 돌았으니까.”(노인회장)

골짜기 많아 농사 짓기 어려워

행정1통은 지형상 산이 많고 골짜기가 많다보니 행정2통에 비해 농사터가 적다. 때문에 예부터 큰 농사처를 가진 대농이 적었다.

“골짜기가 많으니 농사 짓기가 어려웠지. 대부분이 보리나 콩 같은 잡곡을 심었어. 그래도 단합은 젤 잘 되는 마을이여~.”

“농사처는 작고 산 아래 논밭이니 일거리만 많아. 소득이 많지 않아서 옛날에는 쌀밥 못 먹는 집이 많았어. 근래에는 옥수수 작목반이 생겨서 소득이 꽤 올랐어. 당진시에는 유일한 옥수수 작목반이지.”

행정1통 경로당에 모인 어르신들은 “당진시내 마을 중에서도 행정1통은 개발이 늦어져 소외됐다”고 토로했다.

“당진 내에서 행정1통에 소나무가 제일 많댜. 그래서 도시개발계획이 취소되기도 했었어. 옥돌고개를 넘어 당진시장까지 가려면 얼마나 힘들었나 몰라. 지금도 대덕동으로 넘어가는 길, 채운동(구 백암리)으로 연결된 길을 넓혀달라고 수차례나 건의를 했는데 잘 안 이뤄지네. 우리 동네는 개발이 늦어져 소외되고 있는 것 같어.”

태성산 성곽, 순천 장씨 집성촌

행정1통의 산 중에서도 마을회관 뒷산인 태성산이 가장 높다. 미리봉에서는 석문 바다까지 내다 보인다고.

“회관 뒷산에 오르면 옛날에 신암을 지나가는 열차 연기까지 보였다구~.”

태성산에는 아직까지 성곽 자취가 남아 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은 “큰 냇가인 역천을 통해 적이 처들어 오는 것을 감시했던 성곽이 태성산에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산의 정기를 받아 인물도 많이 났다.

“장규순 전 군수도 우리 마을 출신 아닌가. 대령도 나왔지. 중령, 소령도 많이 나왔고.”

행정동은 순천 장씨의 집성촌이다. 옛날에는 10집 중 8집이 장씨일 정도였다고.

“순천 장씨의 못자리판이나 마찬가지여. 200호가 살았다고 하면 160호는 장씨 일가였으니까. 장씨가 행정동에 자리를 잡은 건 220여 년 전쯤 될거여.”

전기는 가장 빨리 들어와

근래에 당진시내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 한편, 아직까지 행정1통은 농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골짜기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풍경이 많지 않다는 게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개발이 늦은 행정1통이지만 전기만큼은 당진시내에서 가장 빨리 들어왔단다.

“개발은 늦었어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 동네가 전기는 빨리 들어왔어. 지금 동사무소가 있는 자리보다도 우리 마을이 더 빨리 전기가 들어왔다니까.”

“그때는 전기를 들여놓을 때 자부담도 있었지. 큰 소 두 마리를 팔아서 전기를 들여놓았어.”

“1946년쯤 됐을 거여.”

행정1통 마을 어르신들은 “개발도 늦고 농사처가 많지 않아 풍족하지 않은 마을이지만 단합만큼은 1등”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