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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경로당이 ‘성수기’를 맞았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윷도 놀고, 장기도 둔다. 끼니 때가 되면 밥 당번을 정해 시래기된장국에 점심도 함께한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밤절과 아랫말이 합쳐져 원당3통
당진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당진종합터미널 부근이 손에 꼽히는 변화지역이다. 원당3통 원당마을아파트 노인회 회원들은 “산과 논, 밭뿐이던 원당마을이 10년 사이에 당진에서 제일 번화한 마을로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원당3통은 원당마을주공아파트 단지로 이뤄져 있다. 2003년 아파트가 준공되기 이전, 원당3통은 지금의 야호대와 남산에서 이어진 산 능선이었다고 한다. 산 아래 드문드문 집을 짓고 사는 가구가 서넛이었을 뿐 마을이 형성되지는 않았다는 게 노인회 회원들의 설명이다.
“지금 원당3통은 밤절이랑 아랫말 일부가 합해진 곳이지. 아파트가 들어선 이 자리는 전부 산이었어. 야트막한 뒷산이었지. 그린빌아파트 부근에는 아직까지 그 산줄기 일부가 남아 있어.”
“102동부터 106동 부근은 논이었고 대게는 산이었어. 수청동 쪽으로 일부 아랫말 밭이 조금 포함되긴 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원당마을이 이렇게 변한 건 참 누가봐도 격세지감이여~.”
원당3통의 옛 자연부락 지명은 밤나무가 많아 이름 붙은 밤절(율사)과 아랫말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요 부근에는 아랫말, 용머리반, 감나무골, 고양재, 백정골, 안골, 대적골 같은 옛 마을이름이 전해졌었지. 지금이야 아파트 단지가 되었으니 잘 쓰진 않지만 그래도 본토박이들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지.”
산 넘어 당진시장에 다니던 시절
당진종합터미널이 구도심에서 원당동으로 이전해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당마을아파트가 완공됐다. 이후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린빌아파트가 마주해 들어섰고 부경1차, 2차 아파트가 순서대로 들어섰다. 산과 들로 이뤄졌던 원당동이 몇 년 사이에 3천세대가 거주하는 대규모 주거단지로 변모한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원당동 사람들은 당진시장에 가려면 원당3통에 솟은 산자락을 넘어 다녀야 했단다. 고개를 넘으면 지금의 계성초등학교에 닿았다고. 지금 원당3통의 학군은 원당초등학교이지만 이전에는 계성초등학교에 다녔고, 그보다 이전에는 당진초등학교로 학교를 다녔다.
원당동에는 주로 무안 박씨들이 많이 살았단다. 지금은 집성촌을 이뤘던 원주민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외지에서 찾아온 주민들이 많아져 집성촌이 사라졌다는 게 노인회 회원들의 설명이다.
옛마을 이름 지켜냈다는 자부심
집성촌을 이루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처럼 지냈던 마을에 산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특히 마을 구성원들의 변화가 가장 컸다. 원당마을 아파트 경로당에 모인 30여 명 남짓한 노인들 중에 원당3통 원주민은 3명뿐이었다.
“사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살고 있지. 옛날 토박이들은 몇 명 안돼. 연령대별로 나눠 보면 나이 많은 노인들은 외지인보다 당진 사람이 많은 편이고 젊은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당진 토박이 보다 더 많은 것 같아.”
경로당에 모인 노인회 회원들도 대다수가 송산, 송악, 합덕, 당진 읍내 등에서 이사를 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노인분들 중에서는 송산, 송악처럼 산업단지 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에서 이사 온 분들이 많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온 어르신들에게 아파트 내 노인회는 사람 만나는 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랑방이다. 아파트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윷놀이를 하며 적적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고향마을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어르신들은 고향 이름을 지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파트가 완공되고 입주를 앞두고 있을 때쯤 아파트 이름을 공모했었어. 별 이름이 다 왔는데 원당동이라는 옛 지명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 옛 마을이름을 지켜내서 뿌듯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