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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경로당이 ‘성수기’를 맞았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윷도 놀고, 장기도 둔다. 끼니 때가 되면 밥 당번을 정해 시래기된장국에 점심도 함께한다. 어르신들이 한데 모인 경로당을 찾아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수십 년 전 마을의 옛 모습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옛날을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신 지금 듣고,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작지만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기억으로 쓰는 마을의 구술사’ 신년기획 ‘경로당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5개반, 군량골부터 탑상골, 해촌까지
슬항리는 1, 2리로 분구되어 있는데 산 줄기 모양이 거문고 비슷한 비파목 같다해 비아목 즉 슬항리라 하였다고 한다. 대촌1리 옥녀봉과 같이 옥녀탄금형의 명당이라 알려져 있다. 슬항리의 슬은 25현의 큰 거문고라는 뜻이고 금은 7현의 소거문고로 예부터 다정한 부부를 가리켜 금슬이 좋다고 하였다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슬항1리는 5개반으로 이뤄져 있다. 1반은 말앞골, 군량골이라는 불리는데 옛날에 군량미를 보관하던 곳이라 해 군량골, 마을 앞의 골이라 해 말앞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히 말앞골 산에는 백로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봄이면 백로가 날아들지,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날아와. 그리고는 새끼를 치고 키우다 늦가을 쯤이면 날아가지. 그랬다가 다시 봄이면 그 자리를 기억했다 찾아오는 거여. 지금은 백로가 싼 배설물 때문에 소나무가 허옇게 변했지.”(손종섭 씨)
용두리를 지나 슬항1리로 들어서는 입구, 넓은 소나무밭에 흰 백로가 서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새끼 새가 비행을 연습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2반은 양산골, 큰돌을 사람 모양으로 깎아 세워 놓고 소원 성취를 빌었던 탑이 있다고 하여 이름붙은 탑상골로 이뤄져 있다. 지금은 탑이 사라지고 없다고.
3반은 마술, 4반은 바닷가 마을이란 뜻의 해촌이라 불린다. 5반은 풍수지리상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모형의 명당이라 하여 갈마울이라 불린다.
길쌈 전통 이어져 와
슬항1리 주민들은 논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 더러 밭농사를 짓는 이들은 감자, 고구마, 마늘을 심어 키운다.
밭작물 중에서 슬항리의 특수작목인 청삼, 삼베가 있다. 고대면 슬항리는 10여 년 전부터 삼베마을로 지정됐다. 수십년 전에는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길쌈을 했지만 지금은 슬항리 근방을 통틀어도 삼베 짜는 집이 20농가도 채 되지 않는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더러 길쌈을 하지. 청삼도 심어서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한다더만. 옛날에는 슬항리는 물론이고 이 근방 주민들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죄다 집에서 삼베옷을 직접 해 입었었어.”(최희섭 씨)
한편 몇 해 전부터 당진시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청삼 체험행사도 진행하고 업체와 함께 청삼샴푸, 화장품 등도 개발하고 있다.
고성 김씨 집성촌, 고대초 학군
슬항1리는 고대초등학교 학군으로 요즘에는 마을에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5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젊은 주민들이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전후로는 슬항리에 강습소가 없어 대촌리, 진관리에 위치한 강습소를 다녔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예부터 물건을 팔고 사러 용두리 고대장을 다녔다. 구장벌이라고 하는 옛 고대시장은 한때 소와 돼지를 사고파는 우시장이 설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우리 아버지뻘되는 어르신들한테 들었는데 그때는 소, 돼지도 팔았다더구만. 우리 어릴 적에는 지금 고대종합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부근에 저수지가 있었고 그 근천에 고대장이 섰었어. 고대장이 폐쇄된 뒤로는 당진장을 다니지.”(김홍수 씨)
슬항1리에는 고성 김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주로 3반에 밀집해 있는데 슬항리를 통틀어 약 30%가량이 고성 김씨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