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면 천의2리 농경지40ha가 침수됐다.
정미면 천의2리 농경지40ha가 침수됐다.

침수 된 벼, 이삭 영글지 못해

정미면 너른 들판에서 파랗게 넘실거리던 벼들이 며칠사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천의2리 이남용 이장은 “이삭이 피는 시기에 벼가 물에 잠겼다 나오면 이렇게 검붉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물이 빠지고 나면 다 똑같은 줄 알지. 근데 모르는 소리여. 물에 벼가 침수됐다 나오면 추수할 때 수확량이 2/3로 확 줄지. 쌀알이 제대로 영글지를 못 한다니께.”

이 이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내린 폭우로 천의2리를 흐르는 염솔천이 범람해 밤 10시부터 논이 침수되기 시작, 약 17시간 가량 논이 물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이번 비로 인근 농경지 40ha가 피해를 입었다.

한편 농민들은 울상인데 당진시는 태평하다.

13일 취재 당시 시청 관계자는 “일시적인 침수로 24시간 내에 물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해지수에 따라 해당 기준에 포함되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미면 승산리 윤석동 씨의 주택이 집중호우로 인해 불어난 염솔천이 범람하면서 침수됐다.

한밤중 지붕위에서 “사람 살려”

“밤 11시 쯤 살려달란 소리가 들렸어요. 지붕 꼭대기에서 두 내외가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요.”

정미면 승산리 김낙범 새마을지도자는 지난 12일 밤, 비가 오는 게 예사롭지 않아 동네 순찰을 돌던 중이었다. 구호를 요청하는 윤석동, 정언정 부부를 발견하고 119에 곧바로 신고했다.

당시 윤 씨 부부는 한밤중에 집이 물에 잠겨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휴대전화도 물에 빠져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성천 이장은 “집 앞을 흐르던 염솔천이 범람해 사람 키 높이의 담장을 넘어 물이 들어왔다”면서 “오죽했으면 지붕으로 올라갔겠냐”며 당시 상황이 급박했음을 전했다.

윤석동 씨는 대피 과정에서 얼굴을 다쳐 12바늘을 꿰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진시대>와의 통화에서 “세입자다. 모든 살림이 다 망가지고,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 살렸다.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겠냐”고 호소했다.

당진시는 “피해상황을 조사한 후 법적인 범위 내에서 지원을 한다”고 전했지만 윤 씨는 “예전에 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지원금이 얼마 안 될거라며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 이장은 “매 년 두 세 차례씩 염솔천이 범람한다”며, “하천 정비를 했는데 이정도”라고 한탄했다.

정미면 봉생리와 고대면 항곡리 경계에 있는 집에 골짜기에서 돌과 자갈이 휩쓸려 내려왔다.
정미면 봉생리와 고대면 항곡리 경계에 있는 집에 골짜기에서 돌과 자갈이 휩쓸려 내려왔다.

고대면 항곡리 육본영 씨는 면 경계에 산다. 대문은 하나인데 주인집은 정미면 봉생리이고 정 씨가 살고 있는 집은 고대면 항곡리이다. 집이 산 골짜기 아래에 있어 비가 올 때면 집 옆으로 물이 흐른다.

지난 12일 쏟아진 물폭탄 세례로 골짜기에서 바위가 굴러내려왔다. 마당은 물론 방 안까지 빗물과 토사가 밀려 들었다. 15일 쏟아진 비에 또 다시 흙과 자갈이 집을 막았다.

육 씨는 “폭우가 올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며 “정미면과 고대면 어디에서든 손을 써야하지 않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고대면 손종규 부면장은 “골짜기 아래에 있는 집에 배수로가 전혀 없다”며 “산주인과 건물주인이 있는 사유지에 대해 면에서 배수로를 놓거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산주인과 건물주인이 합의를 해서 배수로를 놓아야 한다고 보며 응급복구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대려면 비가 그쳐야 가능하므로 기다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미면 담당자는 “비 피해 현황을 한창 조사 중이라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며 “사유지이므로 해결방안을 찾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호지면 송전정미소가 물에 잠겨 쌀과 벼, 도정기계 등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대호지면 송전정미소가 물에 잠겨 쌀과 벼, 도정기계 등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마룡천 흙물 송전정미소 집어 삼켜

대호지면 송전리에 위치한 송전정미소 윤석진 대표는 빗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15일 한창 복구 작업 중이던 윤 대표는 “어제도 비가 와 걱정이 돼서 두 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나왔다”고 했다. 비가 쏟아질 때마다 정미소에 물이 들어찬 게 벌써 네 번 째다.

현장을 찾은 15일 오전, 송전정미소 앞 마룡천이 흙탕물이 되어 붉게 흐르고 있었다.

“정미소 윗쪽에 하천 정비사업을 했는데 그 때 퍼온 흙을 정미소 반대편 천변에 쌓았어요. 쌓아 올린 흙 때문에 하천 폭이 좁아지고 반대편 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니 물이 범람해서 정미소로 흘러들어 올 수 밖에요.”

그는 시의 보상도, 대책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표는 “매번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해 왔다”며 행정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불사할 생각이다. 12일 하천이 범람해 정미소로 들어오던 밤, 급한 대로 시청 상황실에 연락했지만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80kg짜리 찹쌀 50가마, 맵쌀 30가마, 1300kg짜리 벼 80개, 쌀포대 4만장, 그리고 도정기계 등이 물에 잠겼다”고 말했다.

창고 한 켠에서는 물에 불어 난 쌀이 더운 열기를 내뿜으면서 부패해 가고 있었다.

당진 비 피해 이모저모

1. <당진시대> 7월 27일 자 920호에 보도된 석문면 삼화1리는 이번 폭우에도 어김없이 농경지가 침수됐다. 마을 주민들은 “동신포 하류 교각에 짚풀이 걸려 물의 흐름을 방해한다”며 “교각을 없애달라”고 요구 중이지만 시와 농어촌공사 등 관계당국은 예산 문제로 당장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국에서 ‘돈 타령’만 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은 어김없이 물에 잠길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매년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왜? 돈 벌어야 하니까.

2. 정미면 도산리 일대는 초토화 상태다. 전답이 침수 된 것은 물론이고 토사가 밀려 들어온 곳이 여러 군데다. 649번 지방도로 갓길이 붕괴됐고 마을 근처 길도 10여 군데 유실됐다.오병한 이장은 “빨리 보수를 하지 않으면 주저 앉게 생긴 곳도 있다”며 “그런데 길이 질어서 손도 못 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가 더 내리면 마을 안길 까지 붕괴의 위험이 있어 최대한 빨리 손을 써야만 한다. 마을에 흐르는 염솔천변 제방이 5~10m 씩 무너져 내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3. 대호지면 마중리도 상황이 심각하다. 농경지 곳곳이 매몰됐다. 남옥현 이장에 따르면 약 2000여 평이 물에 잠긴 것으로 나타났다. 마중리에서 송전리를 따라 흐르는 마룡천이 넘쳐 토사가 밀려 들어왔다. 하천 정비공사도 했고 배수관도 묻었지만 폭탄처럼 집중 투하되는 비를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다.

고대면 항곡리 채운뜰에서 한 농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고대면 항곡리 채운뜰에서 한 농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채운동 코아루 아파트 옆 산비탈에 토사가 쓸려 내려와 인도를 덮쳤다.
채운동 코아루 아파트 옆 산비탈에 토사가 쓸려 내려와 인도를 덮쳤다.
정미면 승산리 염솔천이 폭우로 인해 범람했다.
정미면 승산리 염솔천이 폭우로 인해 범람했다.
정미면 승산리의 한 텃밭이 폭우로 범람한 염솔천으로 인해 훼손됐다.
정미면 승산리의 한 텃밭이 폭우로 범람한 염솔천으로 인해 훼손됐다.
대호지면 송전리 일대 마룡천이 범람해 길가에 심어놓은 꽃과 나무가 토사에 밀려 훼손됐다.
대호지면 송전리 일대 마룡천이 범람해 길가에 심어놓은 꽃과 나무가 토사에 밀려 훼손됐다.
대호지면 마룡천이 범람했다.
대호지면 마룡천이 범람했다.
송산면 명산리 서원천이 범람해 인근 논이 침수됐다.
송산면 명산리 서원천이 범람해 인근 논이 침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