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26일 오전 7시 5분. 순성면 광천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재이랑(재구) 할아버지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다가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24번의 수술을 하면서 1년을 입원해 있다가 결국엔 왼쪽 무릎 밑을 절단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마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의족을 차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두 남매를 길렀다.

“동네 사람들이 나더러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어. 다리가 이지경이 됐는데 악착같이 일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들 말했지.”

입에 풀칠도 못하던 시절

정미면 대운산리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 세 살 때 아버지의 상여가 나갔다. 아버지의 흔적으로 남은 건 ‘재이랑’이라는 독특한 이름뿐이다. 이마저도 청년이 돼서야 찾았다.

“입대하려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이재이랑’을 찾더라고. 난 그전까지 ‘재구’라고 불렸었어. 멀뚱히 있다가 주민번호를 확인했는데 그게 나더라고. 그제야 알았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재이랑’이라는 걸.”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느라 학교에 갈 여력도 없었다. 이따금씩 수수나 콩을 배급받아 먹었다.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도 했다. 12살 되던 해에 외삼촌이 살고 있는 순성면 광천리로 왔다.

청각장애인 아내, 아들 잃고 눈물

그러다가 스물여덟, 당시 치곤 꽤 늦은 나이에 청각장애인 아내 최효선(66)을 만났다.

“어릴 때 침을 잘못 맞았데. 듣지도 못하는 벙어리한테 장가간다고 사람들이 수군수군해 댔지. 근데 나는 보란 듯이 잘 살 거라고 생각했어.”

딱히 수화를 배운 건 아니지만 손짓과 입모양, 표정으로 대화한다. 40년 넘게 살아 왔으니 ‘척 하면 척’이다.

결혼하고 3년 만에 첫 아들을 가졌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오려던 순간 아이는 하늘로 떠났다.

“다리병신” 멸시 받기도

3년 후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또다시 3년이 지난 후에 딸도 태어났다.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서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결국엔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사고를 당했다.

아들의 결혼식 전날, 머리를 자르러 이발소에 갔는데 누군가가 “다리병신에게 누가 딸을 주느냐”고 말했다. 다리를 다친 이후 끊었던 술을 그 얘길 듣고 다시 마셨다.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수군거림, 멸시, 천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할아버지는 자녀들이 받았을 상처가 클까봐 걱정했다.

“좋은 세상, 끝까지 살아 봐야지”

할아버지는 “우리 며느리가 들어온 게 제일 기쁘다”며 “없는 살림에 시집와 줘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특히 손주 얘길 꺼내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자식 낳을 때보다 손주 낳을 때가 더 좋았어. 손주들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할아버지는 단 한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악착같이 살아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디에 있어. 명 다할 때까지 살아도 아깝다고 하는구먼, 이 좋은 세상 끝까지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