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드라마는 사극이 대세다. 그 중 병자호란과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 초기를 배경으로 한 두 종류의 드라마가 눈길을 끈다.

병자호란은 준비 없는 국방이 얼마나 큰 댓가를 가져오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허약한 정치력에 끼어들어 국정을 문란케 한, 한 여인의 삶을 다루고 한편은 인조반정으로 강고한 정권의 중심을 이루던 서인당에 반격을 가하는 숙종의 고군분투를 다룬 드라마다.

숙종은 집요하고 치열한 서인당을 견제하려 남인당의 김만중(金萬重1637-1692)을 중요하고 그의 딸을 왕비(인경왕후)로 맞아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한다.

숙종은 조선 27대 왕을 통 털어 가장 강성한 국방책을 꾀했던 왕이다. 이 시대 탁월한 방산 장비가 개발되었고 사거리가 천보에 달하는 조총을 개발하기도 했다.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왕이다. 그의 손에 서인당의 영수이자 노론당의 창시자였던 송시열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숙종시대의 탁월한 인물 중 한 사람인 김만중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던 해 태어난 호란동이다. 김만중은 사계 김장생의 후손이다. 김장생은 살아생전 아들 김집과 김반을 대동하고 당진으로 피신을 온 구봉 송익필을 정성으로 모셨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로부터 ‘이기일원론’을 전수받고 송익필로부터 예학을 이어받아 조선성리학의 예론을 펼친 사람이다.

김장생의 아들 중 김반은 송익필을 전담으로 맡아 지극정성을 다 한다. 그 김반의 아들 중 김익겸이 있는데 김익겸은 23살의 나이에 병자호란을 맞아 강화도로 피신을 간다.

김익겸은 강화도에서 전투중 순절을 했고 그 아내 윤씨가 당진으로 피난을 가는 배안에서 아들을 해산한다. 그 사람이 김만중이다. 유복자 김만중이란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이다.

윤씨는 당진의 광산김씨 문중의 한 칸 방을 얻어 수년여를 피난살이를 한다. 강화군에서는 이 사실을 놓고 김만중의 고향이 강화다 말한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김만중의 고향은 그의 태를 묻은 당진이 맞다. 일부 학자중에는 당진이 맞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진은 잘 모른다. 잠깐 당진을 거쳐간 문신들을 군지(郡誌)에 가득 기록하면서도 김만중은 빠져 있다. 김만중은 서포만필로 유명한 조선중기의 탁월한 문인이다. 그가 지은 구운몽은 조선은 물론 중국까지 전해져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김만중은 유복자였으나 그의 어머니 윤씨의 현명한 훈육으로 내실을 키워 20대 후반 과거에 급제를 하여 출사를 한다.

김만중은 당시대의 트렌드였던 성리학이 모든 것이란 인식에 공감을 하지 않고 학문적 힘을 키운다. 그는 지구가 둥굴다(地圓說)는 과학적 인식에 공감을 하는 뛰어난 학자였다. 김만중보다 백년후 사람인 정조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에 코웃음을 쳤을 정도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선 최고의 효자 서포 김만중을 생각해 본다.김만중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노모를 위해 귀양지에서 소설을 쓴다.

김만중의 소원은 자신이 지은 재미난 이야기를 노모의 귓전에 소근 소근 들려주는 것이었다. 부모를 위한다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효자는 세상에 가득하고 효자는 드물다. 노모의 귀에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 들려주는 것이 그리 힘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