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타임 노 씨(Long times no see 오랜만입니다).”

“하우 머치 이즈 잇(How much is it 얼마에요)?”

어르신들이 영어공부에 푹 빠졌다. 미국인처럼 혀에 ‘버터’ 바른 소리까진 아니더라도 선생님을 열심히 따라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는다.

합덕읍 운산리에 위치한 남부노인복지관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어르신들이 영어를 배우고 있다. 농번기에 접어들어 바쁜 와중에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한다. 이렇게 영어공부를 한게 어느새 3년이 됐다.

“일주일 내내 이 수업시간만 기다려요. 어찌나 재미있는지 몰러~”

학창시절 돌아간 듯 웃음꽃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공부이다 보니 ‘뒤돌아서면 까먹고, 뒤돌아서면 까먹고’를 반복하면서도 배우는 기쁨이 크다.

박춘자 씨는 “손자들과 통화할 때 배운 표현들을 바탕으로 영어로 얘기하기도 한다”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면 어르신들은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이해가 어려운 단어는 서로 토론하면서 그 의미를 발견해 나가기도 한다. 수업시간 내내 웃음과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공부가 아니라 놀이에 가깝다.

요즘 청년들이 책상머리에서 토익책을 붙잡고 끙끙매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뒤늦은 배움이 어르신들에겐 그 무엇보다 삶의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참 많이 외로웠어요. 그러던 중 이 영어수업에 참여하게 됐지요. 적적한 노인들이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들고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이순안 씨)

즐겁고 재밌게 노는 시간

가족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3년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건 강사 김성욱 씨의 공이 크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김 씨는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1970년대 중동지역에 건설 붐이 일었던 시절, 그는 해외 각종 공사를 수주하며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게 지금 다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7년 전 당진에 정착해 귀농인으로 살아오다 우연한 계기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한 번도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어 처음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즐겁게 노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르신들이 나이를 잊고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걸 보면서 그도 더 많은 보람과 책임감을 느꼈다. 늦깍이 학생들이 배운 것을 숱하게 잊어버려도 그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몇 번이고 반복한다.

신무자 씨는 “머릿속에 쏙쏙 기억될 수 있게 가르친다”며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같은 걸 되물어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이해될 때까지 설명해 준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을 통해 이들은 영어만 배우는 게 아니다. 각자의 삶과 경험을 나누면서 생활지식이 더 많이 풍부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롭고 쓸쓸한 노년기를 함께 발맞춰 걸어가는 이들로 하여금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언어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통로가 되듯 어르신들에게 영어수업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너도나도 한마디]

신무자(우강면 창리·70 ) 딸이 외국에서 살아서 종종 해외에 나가곤 해요. 영어를 배우니까 낯선 땅에서도 자신감이 생기고 의사소통도 할 수 있어 좋지요.

윤지현(우강면 송산리·71) 자꾸 까먹어도 이 나이에 배우려고 노력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손자·손녀에게 할머니도 공부하는 모습이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승수(우강면 공포리·72) 노년기에 자기계발을 할 수 있어 좋아요. 농촌에서 살면서 스스로 퇴보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는데 지금은 아주 행복합니다.

이순안(합덕읍 중동리·75)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여서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하고 있어요. 공부하러 오는 것이 즐거워 매주 월요일만 기다리게 된다니까요.

김소조(합덕읍 대전리·88 ) 남편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됐어요. 제가 우울할까봐 며느리가 걱정됐는지 추천해주더라고요. 앞으로 열심히 배워볼 생각입니다.

박춘자(순성면 중방리·73) 손자 생일축하 노래를 영어로 불러주니 “할머니가 ‘짱’”이라고 하데요. 일상적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 기뻐요.

김성욱(순성면 백석리·64) 선생님 귀농 후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어르신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또 다른 삶의 활력을 찾게 됐습니다. 영어 공부가 아닌 함께 노는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