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부터 능성 구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가교1리는 아늑한 시골마을이다. 신암사가 있는 국사봉과 차돌이 많이 났다는 차돌팍산, 산이 유난히 푸르렀던 푸렁산, 기지시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평상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예부터 좌청룡 우백호가 겹으로 감싸 안은 명당고을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서울·수도권과 가까워진 송악읍 대부분의 마을에는 이주민이 늘고 여러 공장도 생기면서 개발을 거듭하고 있지만, 가교1리 만큼은 소규모 공장 하나 없는 때 묻지 않은 마을이다.
▲ 가교1리 마을전경 산이 많아 밭작물 비중 커
“송악읍 전체인구는 늘고 있지만 가교1리는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계속되는 오지 마을이죠. 하지만 그만큼 환경적으로는 잘 보존되고 있어요.”(구자애 이장)
모내기를 끝내고 다른 마을은 농한기에 접어들었지만 가교1리 주민들은 여전히 바쁘다. 산이 둘러 싸고있어 밭작물을 많이 기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감자, 콩,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기른다. 마을이 오봉천의 발원지이다 보니 천수답이지만 샘이 풍부해 물 걱정은 없이 살았다. 특히 물이 맑아 민물고기가 많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불어난 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든 우렁이며 미꾸라지도 논마다 그득했다.

고려시대 창건된 신암사
가교1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은 단연 신암사다. 이곳에는 보물 제987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좌상이 있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때 능성 구씨 4대손인 구예가 가문의 원찰로 창건했다. 특히 신암사의 주존불인 금동여래좌상은 온화하고 잔잔한 미소와 더불어 장대한 상체에서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능성 구씨는 지금까지도 매년 이곳에서 조상들을 섬기며 제를 올린다.
마을 곳곳에 산과 언덕이 있어 길목마다 서낭당도 여럿 있었다. 주민들이 고개를 넘으며 돌을 쌓고 기도를 올렸던 돌무덤에 오색천을 주렁주렁 달아놔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서낭당에서 처녀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문도 돌았다. 돌무덤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밭을 일궜다는 한 주민이 원인 모르게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마을 유래비 옛 모습 전하고자 유래비 세워
면천군 시절, 이 지역은 삽교리, 신암리, 가재울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재울의 가(佳)자와 삽교의 교(橋)자를 따서 가교리라 불리기 시작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게 되면서 주민들은 “마을 이름처럼 ‘아름다운 다리(佳橋)’가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원로들은 고속도로가 우백호를 통과한다 해 노선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엔 마을 앞이 탁 트였는데 지금은 꽉 막힌 형국이 됐지.” (구자균 노인회장)
주민들은 아름다운 마을의 옛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0여 년 전 마을의 유일한 관문인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 유래비를 세우고 묵묵히마을을 지켜가고 있다.
▲ (왼쪽부터) 구자애 이장과 구자균 노인회장 우리마을 주민대표
“선비정신 바탕 온화한 마을”
“마을 사람들이 드세지 않고 온순해요. 순박하고 선비정신이 있는 마을이지요.”(구자균 노인회장)
마을을 감싸고 구불구불 부드럽게 이어진 산능선처럼 마을 주민들도 온화한 성품으로 마을일을 하는 데에 협조가 잘 되는 편이다. 당진에서 이름난 유학자 이인태 선생의 고향으로 제자들도 많았다고. 구자애 이장은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공동체가 마을 인구가 줄면서 무너져 가는 게 아쉽다”며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가 많아 농사일을 이어받을 영농후계자가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120여 가구가 넘던 가교1리에는 최근 60여 가구만 남았다.
“송악읍이 다른 마을에 비해 발전은 더디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로 이어져 오고 있어요.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잘 보존하고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