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 및 출판서적 40권
고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을 떠난 이 교수는 우연히 러시아 문학에 빠지게 됐다. 197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사회주의국가였던 소련(러시아)은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냉전시기에 소련을 공부하는 것은 전망이 어두운 일이었다. 당시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잡고 공부했다.
1989년 교수로 부임한 다음해에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수교가 이뤄졌다. 베일에 싸여 있던 러시아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지만, 러시아를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회에서 이항재 교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는 한국 러시아문학회를 처음 만드는 등 한국에서 러시아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에 산파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9권의 책을 썼고 30권의 번역서를 냈다.
“러시아문학은 대지의 문학”
이 교수는 “처음엔 전망도 없고 앞날이 어두웠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보람이 크다”며 “젊은이들이 쉽고 미래가 보장된 길이 아닌 다른 이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 <첫사랑>으로 유명한 뚜르게네프를 전공했고, 젊은 날엔 인간의 절망과 어두운 밑바닥까지 파헤친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톨스토이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여자의 일생을 담은 <안나 카레니나>를 추천했다.
“출생부터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자로 태어나 겪는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며 “여자로 살아가면서 인생을 깨닫게 되고 지혜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문학은 대지의 문학, 모성의 문학입니다. 삶과 밀착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일상에서 내재된 진리를 자연스럽게 보여주지요.”
고산초 총동문회장 고향 일 열심
이항재 교수는 지난해 고산초 총동문회장을 지낼 정도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깊다. 유년시절 대부분의 기억 속이 학교가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비 새고 누추한 학교는 마치 콩나물시루 같았다. 60~70명의 학생들이 빼곡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가 고산초를 다닐 때만 해도 한 학년이 120여 명에 달했고 전체 학생 수는 700명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교생이 40명에 불과하다.
“학생 수가 너무 많이 줄어서 안타깝죠. 하지만 지금은 동문들이 마음을 모아 장학사업이나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어요. 학교 규모는 작아졌지만 지금의 고산초는 많이 발전했지요. 풍물패의 경우 전국에서 유명할 정도고, 전국 학력평가에서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총동문회장을 맡으면서 고향과 모교에 대한 애정이 더욱 두터워진 그는 고산동문회보의 첫 발행을 함께 했다. 회보는 동문들의 소식은 물론 고향과 모교의 소식 등을 접하며 서로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고향은 존재의 뿌리
이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고향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격동의 시기였던 젊은 날을 치열하게 보냈지만, 나이를 지긋이 먹어갈 수록 생각만으로도 가슴 따뜻해지는 고향이 무척 그립단다. 그는 시간이 될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산천을 둘러보면서 몸과 마음의 쉼을 얻는다.
“고향은 존재의 뿌리이자 근원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수구초심의 본능이 남아 있죠.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 얻게 된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남은 인생은 고향을 위해 살았으면 해요.”
< 편집자주 >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