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 처칠은 거국내각의 수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전쟁승리 후 치른 첫 총선에서 패한다. 전시내각 부수상이었던 노동당의 애틀리한테 수상 자리를 내주고 절치부심하던 1947년 11월 11일, 그는 하원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이다. 단, 지금까지 시도됐던 다른 정치체제를 모두 제외한다면...”

요즘 우리 정치상황을 보면서 처칠의 연설이 새삼 떠오른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민주주의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왕이 아니라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자신의 대표를 뽑는다. 뽑히는 과정은 당연히 공정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표를 뽑았던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는 여야 모두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이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고, 제18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지 5개월이 지난 지금, 선거운동 기간 불거진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때문에 온 나라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안 남겨놓고 벌어진 이 사건으로 박 대통령은 TV토론에서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하고 인권을 유린했다”며 민주당이 무슨 성폭력집단인 것처럼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천재지변이나, 대형 참사나 일어났을 때나 가능한 그것도 일요일 밤 11시에, 긴급속보를 통해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만방으로 깨진 정확히 선거 1.5일 전이다.

그와 동시에 여직원은 피해를 호소하며 민주당을 고소했고 국민들은 큰 충격 속에 민주당을 심판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검찰조사결과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은 사실이었고, 그것도 여직원 혼자서 한 일이 아니라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경찰의 발표와 수사방해는 영남대학교 출신에 박근혜 대통령과 고향이 같은 대구 달성출신 김용판 서울청장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당시 지금 검찰이 밝혀낸 대로 댓글사건이 사실이며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고 생각해보자. 선거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지난 대선은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 권영세 새누리당 선대본부 종합상황실장, 원세훈 국정원장,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등 즉 새누리당과 국정원 그리고 경찰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불법, 부정선거였다는 것이 우리 민주당의 조사결과이다.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은 작게는 실정법 위반이고 크게는 헌법파괴행위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국정원법 제9조는 특정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그런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정당이나 정치인을 찬양, 비방,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국정원사건은 정확하게 국정원법을 정면으로 위배했다. 법을 지켜야할 국가권력기관이 앞장서 법을 짓밟았다. 이걸 방치하고 어떻게 법치국가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철저한 국정조사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쳐 민심을 왜곡하고, 스스로 탈법을 저지른 국정원의 잘못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정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근본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역사는 질기고 길다. 1987년 직선제개헌이후 치러진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용공조작과 북풍사건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터졌다. 민주정부 10년이 예외였을 뿐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기 위한 절차로 치르는 선거에 그것도 국가권력기관이 불법,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 매번 민(民)의 뜻을 왜곡시키는 것은 주인에 대한 배반이며 국가에 대한 반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