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과 나무로 가득했던 고향집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님께서 신평면 거산리에서 꽃집을 운영하셨기에 집은 항상 식물들로 가득했죠. 부모님께서 당진으로 이사 와서도 제일화원을 운영하셔서 유년시절은 항상 꽃과 함께였습니다.”
(주)삼표 그룹의 총괄 감사를 관장하고 있는 곽병도 상임감사는 꽃과 어우러져 자랐던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평소 밝고 온화하게 자라온 그였지만 고등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님의 속을 많이 썩이기도 했다. 그렇게 방황하던 그를 잡아준 건 종교활동이었다.
곽 상임감사는 “천주교 청년부 활동을 통해 각종 문화행사에 참여하면서 선·후배를 비롯한 친구들과 친목을 다졌다”며 “당진성당 청년부 또래들이 모인 성우회 회원들과 지금까지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을 만큼 끈끈한 정을 나눴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제일화원의 일을 도왔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는 편하기만 했다. 곽 상임감사는 쉬운 길을 가기보다 군 입대 전까지라도 사회생활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당진과 서산, 온양, 광천, 대천, 홍성 등의 전통시장을 돌며 아동복을 팔기 시작했다.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젊은 청년이 시장에서 옷을 팔고 있자니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고 어떻게 해야 물건을 잘 팔 수 있을지도 몰랐죠. 하지만 별 수 있나요. 상황이 닥치고 보니 자연스럽게 일에 적응할 수 있더군요.”
전역 후 포항으로 내려가 포항제철 계열사에서 7년 6개월 간 자금·회계·원가 관리 등의 업무를 보던 그는 1996년 삼표에 입사하게 된다. 곽 상임감사는 근무기간 동안 원칙을 지키는 업무처리 방식을 인정받아 2003년 감사팀원으로 발탁돼 감사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포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죠. 친구들은 물론 당진에 계신 부모님도 명절 때나 찾아 뵐 만큼 먼 거리와 바쁜 업무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타지로 오랜시간 떠나 있다보니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더군요. 오랜 기간 동안 친구와 가족들을 보지 못하자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 땅을 밟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곽 상임감사는 이밖에도 학창시절 다하지 못했던 공부를 더 해봐야겠다는 욕심을 가졌다. 비록 나이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함께 근무하는 이들이 일류대학 졸업생들로 구성되기 시작하며 느낀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왜 내가 공부를 안했을까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물론 빠른 사회생활로 배운 바가 많았지만 내심 후회가 들더군요. 늦게 든 바람이 무섭다는 말처럼 업무만큼 공부에도 충실했죠.”
그런 그에게 2003년 서울 본사로 발령 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삼표 감사실이 본사와 통합됐기 때문이다. 그는 본사 발령 이후 2010년도 임원 승진, 2011년도 상임감사 임명 등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2011년에는 감사원 산하의 감사대학교에서 최우수 감사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부 전문감사 자격증도 취득해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기도 했다.
“오랜 타지 생활 속에 고향의 소식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고향 소식을 접하며 당진이 발전하는 모습을 엿보고 있었죠.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 모습에 큰 우려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당진을 보면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삼표 당진공장과 관련해 지역민의 고용 창출과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을 넓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업과 지역은 함께 상생발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에 맞춘 원칙이 아닌 지역과 함께하는 삼표를 만들어 가는 게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